[모브사이코 100] 귀로

2022년 6월 쯤부터 쓰기 시작했던 소설인데...
도저히 끝까지 쓸 수가 없어서 중후반부 콘티 형식으로 전체 공개합니다.
초반 부분을 가필 수정하면서 게임북 형식을 채용할까 하는 생각으로
살짝 변형하다 만 부분이 있는데... 그 부분도 그대로 남겨두었습니다.
 

작업할 땐 이 브금을 가장 많이 들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장소에 서 있는 레이겐과 리츠와 흘러나오는 이 브금...을
게임 타이틀 같은 느낌으로 상상하고 그랬네요...
 
투쿄 게임즈의 월즈 엔드 클럽을 오마주한 글이며,
작중 모브사이코 100 캐릭터가 아닌 제 오리지널 캐릭터가 나옵니다.
 
이 글로 쓰고 싶었던 것은... 두 사람이 모브한테서 자립(ㅋㅋ)하게 되는 것이었고요
이 사람/녀석 이 다치면 형이/모브가 걱정하니까 < 에서
당신이/네가 걱정되니까 < 로 바뀌는 걸 적어나가고 싶었습니다.
물론 순수하게 서로를 걱정하는 것도 처음부터 어느정도는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둘은 모브가 없었다면 만나지도 않았을 관계라고 생각하고,
모브에 대한 의존도가 가장 높은 캐릭터들이 아닌가 싶었어요
그런 둘이 난관을 헤쳐나가면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성장하는 게 보고싶었네요
 
한줄요약 : 성장물을 쓰고싶었습니다! 이상!
 
조금이라도 즐겨주셨다면 기쁩니다.
포스타입에 올렸을 때부터 반응 남겨주셨던 분들, 좋은 말씀 해주신 분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
 
1화
“의뢰인이 말한 대로라면 여긴데……. 리츠, 뭔가 느껴지냐?”
“으~음. 뭔가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요.”
그래? 길을 잘못 들었나…… 레이겐 아라타카가 땀을 닦으며 말했다. 카게야마 리츠는 다시 주위를 한 번 둘러보았다. 나무로 둘러싸인 숲속에서는 악령의 기척이라곤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저주받은 산 중턱이에요.
레이겐의 사무소인 ‘영등등 상담소霊とか相談所’에 찾아온 의뢰인은 그렇게 운을 뗐다. 쵸미산 중턱에서 사람들이 이상한 일을 겪어요. 산을 오를 땐 분명 한 명 더 옆에 있었던 것 같은데, 중턱을 지나고 정상에 오를 때쯤 보면 그게 아니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세 명이서 등산을 하기로 했었던 것 같은데, 정상쯤 오면 그게 두 명이었다는 거예요. 왜 산을 오르기 전엔 한 명 더 많다고 생각하게 되는 건지 등산객 사이에서 말이 많았는데 전혀 이유를 알 수 없는 거예요. 제가 등산 동호회에 참가하고 있어서 다 같이 실험 같은 것도 해 봤는데…….
의뢰인은 동호회 사람들과 함께 한 실험의 결과를 줄줄이 읊다가, 문득 진지한 어조로,
어쩌면, 사람이 사라지고 있는 게 아닐까요? 모습뿐만 아니라, 기억에서마저…….
라고 말했다. 의뢰인과 눈이 마주치자 레이겐은 자연스럽게 리츠를 쳐다봤다. 그러자 시선을 눈치챈 리츠가 의뢰인에게 “그것 말고 다른 이현상은 없었나요?” 라고 물었다. 의뢰인은 고개를 옆으로 저었고, 리츠도 말없이 레이겐을 보았다. 레이겐은 잠시 고민하는 듯 눈을 감더니, 이내 눈을 부릅뜨고는, “그 의뢰, 이 레이겐 아라타카가 받겠습니다!” 하고, 엄지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의뢰인은 레이겐이 의뢰를 받아들였다는 사실이 기쁜 것인지 얼굴에 미소를 내비쳤고, 레이겐은 그런 의뢰인의 표정을 놓치지 않고 곧바로 이야기를 보수와 관련된 내용으로 옮겨갔다.
보수와 의뢰 해결 기한을 정한 뒤 보고를 위한 연락처를 주고받으면 의뢰인은 잘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정말 해결할 수 있으신 거예요?” 리츠가 말했다.
“악령의 짓이 아니라면 못할 거야 없지. 나는 「판타지 지옥」의 의뢰도 해결한 적이 있단 말이다. 뭐 너도 있긴 하니까…….”
판타지 지옥이 뭔데……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리츠는 저도 모르게 표정을 찌푸렸다.
영등등 상담소. 이곳은 ‘자칭’ 영능력자 레이겐 아라타카가 운영하는 가게로, 각종 제령 관련 상담, 의뢰 등을 받아 해결하는 것을 업무로 하고 있다. 자칭이니만큼 레이겐에게 실제로 영감이라든가, 제령을 할 수 있는 능력은 없다. 보통 사무소로 찾아오는 사람들의 의뢰도 진짜가 아닌 경우가 많기 때문에 ─ 가령 어깨가 뭉쳐 무거운 것을 악령의 탓으로 돌린다거나, 애인이 생기지 않는 것을 악령의 탓으로 돌린다거나 하는 사람들이 많다. ─ 레이겐에게 영능력이 없어도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은 없었다. 단, 개중에는 진짜 악령에 의한 일을 겪고 찾아온 의뢰인도 있었으며, 그럴 때마다 레이겐은 그의 주변에 있는 초능력자들(그다지 놀랍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초능력자는 실재한다. 심지어, ‘들’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야 할 정도다.)을 불러 의뢰를 대신 해결하게 했다.
지금 레이겐의 옆에서 언짢은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리츠 또한, 레이겐이 불러내는 초능력자 중 한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곧바로 쵸미산으로 향하기로 했다. 혹시 모를 습격에 대비해야 한다며 레이겐이 벌레 퇴치제를 정장 안주머니에 넣었다. 습격이라는 단어까지 써가며 거창하게 말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벌레 퇴치제가 필요하다는 생각에는 리츠도 동감했기 때문에, 리츠는 말없이 레이겐의 행동을 바라보기만 했다. 리츠가 끝나면 바로 집으로 돌아갈 생각으로 학교 가방을 챙기면 두 사람은 사무소를 나섰다. 밖은 막 노을이 지려고 하고 있었다.
쵸미산은 영등등 상담소가 자리 잡고 있는 아지타마 현 쵸미시 근처의 산으로, 버스와 도보를 이용하면 어렵지 않게 갈 수 있는 장소였다. 두 사람이 간단히 이번 의뢰의 내용을 복기하고, 오늘 할 일을 이야기하고 있으면, 어느샌가 쵸미산 입구에 도착해 있었다.
그러나 막상 산 중턱까지 와보니 악령은커녕 벌레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이 벌레 퇴치제, 생각보다 효능이 좋은가본데…… 다음에도 이걸로 사야겠다.”
레이겐은 정장 안주머니에서 벌레 퇴치제를 꺼내 상표를 눈으로 훑었다.
리츠가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건가요?”
“우리 둘 다 아무렇지 않다는 건 다른 사람들이 정말로 착각한 거겠지. 착각이라기엔 증인이 좀 많은 것 같다 싶을 수도 있는데, 집단 동조라는 게 있잖아? 실제로 의뢰인이 얘기했던 실험은 ‘동호회’라는 집단에서 행한 거기도 하고. 아무튼, 조금만 더 기다렸다가, 아무것도 안 나타나는 것 같으면 오늘은 일단 돌아가자.”
네, 하고 리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리츠는 산을 오르기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를 돌이켜 봤지만, 이곳에 온 건 처음부터 자신과 레이겐 뿐이고, 중간에 누군가가 사라졌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으며,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레이겐의 말대로 다수의 사람이 같은 이야기를 하고 그것에 점점 많은 사람이 동조하게 된 걸 수도 있을 터였다. 그것만으로 완전히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설령 두 사람이 아직 모르는 게 숨겨져 있다 하더라도, 해가 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 이상 산속을 수색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레이겐은 재빠르게 주변을 돌아다니며 잠시 앉을 만한 자리를 찾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리츠, 이쪽으로 와라!”하고는 큰 소리로 리츠를 불렀다. 리츠는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 위치를 확인하고선 그곳으로 걸어갔다.
그 순간이었다. 레이겐이 걸어오는 리츠를 보다가 급하게 앞으로 뛰쳐나왔다.
“레이겐 씨……!?” 갑작스러운 레이겐의 행동에 리츠는 당황해 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곧바로 레이겐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등 뒤에 무언가가 있다.
이쪽으로 뛰어오고 있는 레이겐과 자신에게 초능력으로 배리어를 치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은 리츠는 어떻게 행동하면 좋을지 필사적으로 궁리해 내려고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리츠!!!”
머리 뒤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렸고, 시야가 암전되었다.
 
*
 
“……허억!”
눈이 번쩍 뜨였다. 그와 동시에 뒤통수에서 통증이 느껴져 리츠는 얼굴을 찌푸렸다. 어떻게 된 거지? 마지막 기억이 희미하다. 머리를 부여잡고 상체를 일으켜 세운 리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등 뒤에 무언가가 있었고, 배리어를 칠 새도 없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로 레이겐 씨가 자신의 이름을 외치는 걸 들은 게 마지막…….
레이겐 씨는 어디 있지?
그런 생각이 들어 문득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리츠의 얼굴에 푸른 빛이 반사되어 왔다. 그러고 보니 주변이 어둡다. 갑작스러운 빛에 눈을 가늘게 뜨고 있으면 이따금 푸른 빛은 검은빛으로 바뀌기도 하였는데, 리츠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이 커다란 고래가 자신의 앞을 지나갔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수족관이다. 눈앞의 거대한 푸른 수조와 고래를 본 리츠가 생각했다. 쵸미산에서 여기까지 옮겨진 건가? 대체 누가, 무슨 수로…… 눈을 크게 뜨고는 움직이는 고래를 바라보던 리츠가 시선을 바닥으로 옮겼다. 주위를 한 번 빙 둘러봤으나 리츠의 학교 가방은 찾을 수 없었다.
리츠는 문득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가방이 없다는 건 영화의 납치 현장처럼 소지품을 모두 뺏기기라도 한 걸까, 라고 생각했지만, 다행히 리츠의 휴대전화는 주머니에 잘 들어있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리츠가 휴대전화를 꺼내 들어 화면 버튼을 눌렀다. 그러나 화면은 켜지지 않았다.
“…….”
이번에는 버튼을 길게 눌러보았다. 휴대전화 회사의 로고가 뜨는 듯하더니 곧바로 다시 꺼진 화면으로 되돌아갔다. 화면이 아예 켜지지 않는 것은 아니니 단순히 배터리가 없는 걸 것이다. 분명 제대로 충전해 둔 걸 확인했었을 텐데.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거지……. 경찰에게도 레이겐에게도 연락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하는 수 없이 리츠는 앉아 있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길을 잃었을 때는 그 자리에 가만히 있는 게 좋다고 어렸을 때부터 배워왔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적어도 누군가에게 연락할 방법이라도 찾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리츠는 고래가 헤엄치던 수조를 지나 길이 있어 보이는 곳으로 나아갔다. 이곳이 어딘지도 모르는 상태이기 때문에, 일단 이 장소를 돌아보면 자신이 있는 위치라도 파악해 둘 생각이었다.
얼마 걷지 않아 리츠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건물의 로고처럼 보이는 것이 한쪽 벽에 장식되어 있었다. 그 벽의 로고에는 「카고시마 수족관鹿児島水族館」이라고 큼지막하게 쓰여있었고, 로고의 오른쪽 아래에 층별 안내가 붙어있었다. 리츠는 그것을 보고 한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이게 세트장이 아니라면, 누군가가 자신을 속이는 게 아니라면, 이 로고대로라면 여기는 큐슈九州의 카고시마현鹿児島県에 있는 카고시마 수족관이라는 뜻이 된다. 카고시마현은 리츠가 사는 아지타마현에서 1,000km 이상 떨어진 곳이다.
리츠가 휘청이듯 벽에서 한 걸음 물러났다. 침착하자. 여기가 정말 카고시마라고 하더라도, 휴대전화 배터리가 없더라도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건 아닐 터이다. 지갑에 적게나마 ─ 아지타마현까지 돌아갈 수 있는 교통비는 없지만, 휴대전화 배터리를 충전하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 현금도 들어있고, 애초에 경찰에 사정을 설명하면 조치를 해줄 것이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구하는 것도…… 주변에 있는 사람?
리츠가 눈을 깜빡였다.
그러고 보면, 사람의 기척이 없다.
폐관 시간이 아니라면 수족관을 관람하는 사람이 있어야 할 텐데.
폐관 시간이 지났다고 해도, 아직 관내에 남아있는 리츠를 아무도 찾으러 오지 않는다는 것도 이상했다. 보통 직원이 와서 내보내는 게 정상 아닌가.
리츠는 떨리는 주먹을 꾹 쥐었다. 어찌 되었든 일단 건물 밖으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발걸음을 옮기려 하는데, 반대편에서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 역시 누가 있나. 직원일까? 아니면……. 직원이 아니라면…….
아까처럼 똑같이 당할 수는 없다. 이번엔 뒤에서 다가오는 것의 속도가 그렇게 빠르지 않았기 때문에 준비를 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정신을 집중하고, 양손을 들어 올려 그대로 뒤를 돌아본다.
“리츠, 여기 있었냐…….”
“……레이겐 씨!?”
발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레이겐이었다.
 
*
 
감고 있던 눈이 슬쩍 떠졌다. 레이겐은 눈을 몇 번 깜빡이며 천장을 쳐다보다가, 무언가 깨달은 듯이 벌떡 일어났다.
여기가 어디지?
주변은 그렇게 밝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주 깜깜하지도 않았다. 불이 꺼져있다기보다는 일부러 그런 조명을 사용한 듯한 느낌이었다. 레이겐은 자연스레 밝은 불빛이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와, 물고기가 헤엄치고 있네…….
뭐?
레이겐의 눈앞에 있는 것은 수조였다. 작은 수조 여러 개가 원을 그리며 전시되어 있고, 수조 안에서는 바다에서 볼법한 생물들이 헤엄치고 있었다. 레이겐은 수조로 둘러싸인 원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자다가 일어나니 수족관이라니, 이게 무슨 일이야? 레이겐은 놀란 눈으로 앞에 있는 수조를 계속 바라봤다.
“……아파!”
그러다 갑자기 머리가 아파져 왔다. 그렇지, 여기 오기 전에 분명…….
 
*
 
레이겐으로부터 수족관에서의 자초지종 ─ 4층에서 눈을 떴으며, 4층과 3층을 둘러보고는 리츠가 있는 2층으로 막 내려온 참이라는 것 ─ 을 들은 리츠가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건 무엇이냐고 물었다.
“어……. 기억이 안 나.”
“뭐라고요?”
“네 뒤에 무언가 있는 게 보여서 급하게 뛰쳐나오긴 했는데…… 그 뒤로는 기억에 없어. 너는?”
‘무언가’라고는 했지만 사실 그 무언가가 뭐였는지도 레이겐은 정확히 떠올릴 수 없었다. 위험해 보여서 막아야겠다고 나서긴 했는데, 정작 뭐가 위험해 보였던 건지 기억나지 않는 것이었다.
리츠는 실망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잠시 말없이 바닥을 바라보았다. 아까는 당황한 상태였기 때문에, 지금은 기억해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시 기억을 되짚어 보려 했다. 하지만 기억은 여전히 모자이크를 친 것처럼 희미하기만 했다.
“저도 특별히 기억나는 건 없어요. 뒤에 있던 게 뭔지 보지도 못했고.”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던 레이겐 씨가 가장 잘 봤을 테니 뭔가 단서가 될 만한 걸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단서는 하나도 없는 채였다.
“핸드폰은?”
“배터리가 없어서 꺼졌습니다.”
“……그러냐. 내 건 켜져 있긴 한데 권외야.” 레이겐이 휴대전화를 열어 리츠에게 화면을 보여주었다. 왼쪽 위에 권외圏外 표시가 되어 있다. 시간은 오후 세 시를 조금 넘어있었고, 날짜는…….
“1999년……?”
“아, 날짜랑 시간 말인데…… 아무래도 고장 난 모양이다. 자동 설정으로 해 놨는데 이러네.”
레이겐은 그대로 휴대전화의 설정 화면을 열었다. 날짜와 시간 항목은 도쿄 시간대를 기준으로 자동 설정이 되어있었다. 말없이 화면을 보던 리츠가 이제 됐다는 듯 레이겐을 바라보면, 레이겐은 휴대전화를 닫아 주머니에 넣었다.
“밖으로 나가면 사람이 있지 않을까요.”
리츠는 여전히 밖으로 나가볼 생각이었다. 이 수족관에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점은 여전히 수상하지만, 밖으로 나가게 되면 상황이 달라질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레이겐의 휴대전화를 보고 나니 날짜랑 시간이 이상한 점도 신경이 쓰였지만 (년도 이전에 오후 세시라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산에 올랐을 시점에 이미 여섯 시는 넘었을 거니까) 권외라고 떠 있는 만큼 통신 오류일 가능성도 컸기 때문에 제쳐두기로 했다.
“그럴지도 모르지.”
레이겐은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는 고개를 빙 돌려 주변을 바라보았다. 한 번은 리츠를 빤히 쳐다봤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레이겐의 행동에 의아함을 느낀 리츠가 “레이겐 씨?”하고 물었다.
“……이왕 온 김에 구경하고 갈래?”
“네?” 레이겐의 말에 리츠가 눈을 크게 떴다. “그게 무슨…….”
“그건 그렇고 진짜 사람이 없네…….”
레이겐은 그 말을 끝으로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리츠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자, “뭐 해? 빨리 와!”라며 리츠를 부르기까지 했다. 리츠는 그 부름에도 한동안 발을 떼지 못했다. 레이겐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저 사람은 지금 자신이 무슨 상황에 처한 건지는 알고 있는 건가? 정체불명의 사람 ─ 확실한 건 아니지만 그때 악령의 기운은 느끼지 못했으니 아마 사람일 것이다. ─ 한테 습격당해서, 원래 있던 곳과는 터무니없이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 깨어난 데다가, 달리 누군가에게 연락할 방도도 없거니와, 어째서인지 사람의 기척도 하나 없는 상태인데, 하는 말이 ‘이왕 온 김에 구경하고 갈래?’라니…….
그런 갖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상황에 레이겐을 모르는 체하고 제멋대로 가버리는 것 또한 할 수 없었다. 리츠는 결국 레이겐의 뒤를 따랐다.
“수족관은 많이 와 봤어?”
조용히 걸으며 수조를 구경하던 레이겐이 말했다.
“어릴 때 몇 번요. 가족끼리 와 봤어요.”
“그래. 애들 데리고 오기 좋은 곳이기는 하지. 오, 이것 좀 봐봐. 해파리다.”
레이겐은 해파리가 헤엄치고 있는 수조를 가리켰다. 리츠는 그걸 보는 둥 마는 둥 하며 지나갔다. 다른 수조를 구경해도 리츠의 반응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
“왜 그래? 언제 또 수족관 전세를 내 본다고. 지금 아니면 이렇게 구경도 못 할…….”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그러시는 거예요?” 레이겐의 말에 참다못한 리츠가 입을 열었다.
“……카고시마 수족관이라고 써 있는 건 봤어.”
“그럼……!”
그럼 한시라도 빨리 돌아갈 생각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어쩌면 지금쯤 리츠와 레이겐을 찾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주말도 아니고 평일이었기 때문에 리츠는 학교에 가야 했고, 레이겐도 사무소 문을 열어야 할 터였다. 다른 직원들이 있다고는 하지만 소장이 말도 없이 결근이라니. 설상가상으로 연락도 안 되는 상태일 텐데 일이 잘 돌아갈 리가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저렇게 태평하게 구경할 수 있냐는 말인가.
시선이 따갑다. 레이겐은 그렇게 생각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레이겐은 태평한 게 아니었다. 당장 이번 의뢰인에게 해야 할 사정 설명부터 이후 예약이 잡혀있던 손님들에게 할 사과까지(이건 어쩌면 세리자와가 혼자 잘 해결해 줄지도 모르지만) 해야 할 일이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라지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뢰인의 말은 설마 이런 거였나.
무단결근한 자신을 대신해서 자리를 지키며 고생할 부소장과 비서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근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지금 내가 이 꼴인데.
돈이 없진 않다. 여차하면 ATM 기기에서 뽑아 써도 될 것이다(하지만 쓸데없는 지출을 늘리고 싶지 않기 때문에 되도록 이건 사양하고 싶다). 카고시마라면 공항이 있으니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면 원래 있던 곳까지 돌아가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경찰에 사정을 설명하면 어떻게 해 주진 않으려나. 리츠 혼자라면 몰라도 나까지는 무리인가……. 공짜로 돌아갈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애초에 여기에 오고 싶어서 온 것도 아니고, 이런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도 그거대로 꽤 위험한 일이었다.
말없이 있는 동안 이것저것 생각해 보았지만, 최종적으로 정한 최우선으로 할 일은 ‘일단 진정하자’는 것이었다. 마침 공짜로 무인 수족관 관람도 할 수 있겠다, 구경이나 조금 한 뒤에 경찰에 신고하든 비행기를 타든 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여기서 눈을 뜬 시점에서 뭐든 늦을 대로 늦었다. 사실은 이게 전부 꿈이고 돌아다니다 보면 깨어날지도 모르는 일이기도 했다.
레이겐은 리츠를 마주 봤다. 혼자서 이런 일을 당한 거라면 분명 방금 한 생각대로, 자신 나름대로 어떻게든 했겠지만, 지금 레이겐의 옆에는 리츠가 있다. 리츠가 아직 중학교 2학년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이유이지만, 카게야마 리츠는 카게야마 시게오의 동생이기 때문에…….
“진정해, 리츠. 네가 많이 당황했다는 건 알겠다. 충분히 그럴 만한 상황인 것도 이해해. 나도 이게 대체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으니까.”
레이겐은 리츠의 표정을 살피며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더더욱 구경하자는 거야. 너도 이것저것 생각하느라 지쳤을 거 아냐?”
“그건…….”
“게다가 혹시 모르지, 이러다가 꿈에서 깰 수도 있잖아. 원인이 있는 곳을 알아내면…….”
“그런 건 안 느껴지는데요.”
“윽…….” 실낱같은 희망이었는데 확인 사살당했군. 레이겐은 급하게 다른 경우의 수를 생각해 냈다.
“네 능력이 너무 낮아서 감지하지 못하는 걸 수도 있다. 사실 나한테는 조금씩 느껴져. 원인은 그 쵸미산에 있다고 말이야.”
레이겐 씨는 능력이 아예 없잖아요. 그 말이 리츠의 목 끝까지 올라왔으나 리츠는 그것을 끝내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이런 순간마저 술술 나오는 헛소리에 어이가 없었지만, 어쩐지 조금은 진정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리츠는 레이겐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조금 더 시간을 들여 2층을 다 둘러본 두 사람은 드디어 건물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배고프다.”
1층으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에 막 탔을 때 레이겐이 말했다. 의뢰를 받고 나갔던 게 늦은 오후였었다. 산을 오르는 데에도 체력을 꽤 썼고, 그 뒤로 아무것도 먹지 않았으니 배고픈 것이 당연했다. 그리고 그건 리츠도 마찬가지였다.
“밖에 나가면 적당한 가게가 있으면 좋겠는데. 카고시마는 뭐가 유명하더라?”
“장어 아닌가요.” 리츠는 언젠가 TV 프로그램에서 보았던 카고시마의 소개 영상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때 같이 TV를 보던 리츠의 형, 시게오가 ‘장어가 운동 후 체력 보충에 좋대.’라고 말했었다. 부활동을 하다가 들었다고 했던가. 그래서 영상의 내용이 기억에 더 잘 남아있었다.
“오오, 장어 좋다. 장어덮밥 같은 것도 맛있겠는데~. 배부터 채우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 생각해 보자고.”
어느덧 1층에 도착한 두 사람은 수족관 정문을 지나 밖으로 나왔다. 밖은 아직 해가 떠 있어 환했는데, 어두웠던 수족관에서 나와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바깥에도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므로 조금 걱정이 되었지만, 수족관이 휴관일이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사람이나 가게가 많을 법한 거리로 나가보기로 하였다.
“……전부 문을 닫았네.”
“…….”
불이 켜져 있는 가게는 보이지 않았다. 지나가는 사람이나, 주차되어 있는 차도 보이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날아다니는 새나 벌레조차도 없었다. 그러니까, 이 상황은 마치…… 지금 움직일 수 있는─살아 있는 것은 레이겐과 리츠, 그리고 수족관에 있는 해양 생물들이 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레이겐의 휴대전화는 여전히 권외였고, 배도 여전히 고팠다.
조용한 거리에 두 사람만이 덩그러니 서 있었다.
 
 
2화
“자.”
레이겐이 리츠에게 녹차가 든 페트병을 건넸다. 리츠는 작게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고는 페트병을 받았다. 레이겐은 다른 손으로 들고 있던 똑같은 페트병의 뚜껑을 열고는 그대로 반 정도를 들이켰다. 리츠는 그런 레이겐을 바라보기만 했다. 시선을 눈치챈 레이겐이 묻는다. 안 마셔? ……지금은 마시고 싶은 기분이 아니라서요. 그래? 그럼 뭐…….
레이겐은 페트병 뚜껑을 닫았다.
둘은 한적한 가로수길에 있는 벤치에 앉아 있었다. 벤치의 바로 맞은편에 자동판매기가 한 대 있고, 그 뒤로 낮은 가게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가게는 어느 한 곳도 빠짐없이 불이 꺼져있는 상태였다. 레이겐은 리츠와 약간의 간격을 두고 앉아, 정장 웃옷을 벗어 팔걸이에 걸치고는 잠시 말없이 맞은편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리츠도 레이겐을 곁눈질로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맞은편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정적이 흘렀다.
 
이 가로수길에 도착하기 전, 둘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조사를 했다. 길가에 있는 아무 가게의 문을 열어보면 쉽게 열렸다. 내부는 전기도 들어왔고 (그런데 놓여있던 유선전화는 이상하게도 작동이 안 됐다) 그대로 카운터에 서서 손님을 받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멀끔했다. 다른 가게의 문을 열어보아도 별반 다를 건 없었다. 사람의 흔적은 남아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아무도 없다. 가까운 경찰서에도, 학교에도, 공원에도, 누구 없냐며 소리를 질러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누군가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이런 상황에서 대답하지 않을 리 없을 텐데. 꼭 둘을 뺀 모든 사람을 세상에서 지워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이런 게 해보고 싶긴 했는데.”
어떤 가게 안을 둘러보던 중에 레이겐이 말했다.
“이런 거라뇨?”
“세상을 독차지하는 거 말이야. 나 빼고 모든 사람이 사라져서, 내가 원하는 건 다 가질 수 있고, 먹고 싶은 것도 다 먹을 수 있고…… 하는 그런 거.”
옛날에 그런 만화도 본 적 있었지 아마. 그렇게 말하며 레이겐이 가게의 TV 리모컨을 손에 들었다. TV 앞에 대고는 전원 버튼을 누르자 화면이 켜진다. 그러나 채널을 아무리 돌려도 노이즈 낀 화면만 흘러나올 뿐이었다.
“근데 그 만화, 마지막에는 주인공이 외로워하는 걸로 끝났어.”
TV 화면이 꺼졌다.
리츠는 본 적이 없는 만화였다. 오래된 만화인 건가, 하고 리츠가 생각했다.
“확실히 한 번쯤은 상상해 볼 만한 이야기이긴 하네요. 게다가, 꼭 그런 식으로 혼자 남지 않아도 혼자 있으면 외롭잖아요.”
“넌 인기도 많은데 혼자라 외롭고 그래?” 레이겐이 고개를 돌려 리츠를 바라봤다.
“갑자기 뭔가요……. 인기가 있다고 매일 누군가가 곁에 있는 건 아니에요.”
아, 인기 있는 건 부정 안 하네? 그럴 만도 하지, 저 얼굴에 성적도 좋고, 학생회도 한다고 했던가……. 리모컨을 내려놓고 주머니에 손을 넣은 레이겐이 리츠를 빤히 쳐다봤다.
“왜요?”
“아니…… 너도 참 대단하다 싶어서.”
리츠가 눈을 가늘게 떴다.
“……얼른 나가죠. 더 이상 볼 건 없을 것 같은데.”
문 쪽으로 고개를 돌린 리츠가 빠른 걸음으로 문을 열고 나갔다. “어이, 같이 가~.”하고 레이겐이 뒤따라 나오며 말했다.
다른 사람을 찾지 못한 채로 길가를 걷고 있을 땐 이런 이야기를 했다.
“차가 한 대도 안 보이네…….”
“차가 있으면 어떻게 하려고요?”
“그야…… 운전해서 가야지.”
레이겐 씨, 운전할 수 있구나……. 그러고 보면 이전에, 레이겐 씨가 운전한 차로 산에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형한테 들었던 것 같다고 리츠는 생각했다. 어딘가로 멀리 제령을 하러 갈 때, 한 번도 차를 직접 운전해서 가는 걸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운전할 수 있다면 운전해서 가는 편이 시간도 절약할 수 있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보다 편하지 않은가. 항상 형이 늦게까지 집에 오지 않는 걸 생각하면……. 그런 생각을 하는 리츠의 옆에서, “기름이 얼마나 남아있느냐에 따라서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는 달라지겠지만…….”하고 레이겐이 덧붙였다.
“이 주변엔 자전거도 없는 것 같네요.”
리츠는 자전거 주차장이 있을 법한 곳을 유심히 살폈으나, 자전거를 주차할 수 있는 흔적만 남아있을 뿐, 자전거 본체는 보이지 않았다. 자전거가 아니더라도, 뭐든 걷는 것보다는 빠를 터였다. 하지만 마치 그냥 걸어서 가라고 말하고 싶기라도 한 듯, 조금이라도 속력을 낼 수 있는 이동 수단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레이겐이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한 얼굴을 했다.
“리츠, 초능력으로 하늘을 날 순 없냐?”
“네? 하늘을 난다니…….”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어렸을 적에, 형인 시게오가 초능력으로 리츠와 시게오의 소꿉친구인 타카네 츠보미를 들어 올려 날아다녔던 것을 떠올렸다. 초능력을 좀 더 단련한다면 사람을 쉽게 띄워서 마치 날아다니는 것처럼 움직이는 것도 가능하게 될까. 좌우간 지금 리츠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리츠는 그만큼의 초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리츠가 고개를 젓자 레이겐은 앓는 소리를 내더니, 모브라면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는데…… 라고 말했다. 리츠가 저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렸다.
“그 녀석이 우리를 찾길 바라기에는…… 사람이 한 명도 없으니 말이지. 어쩌면 모브도 없을지도 모르겠다.”
연락해 볼 방법도 없고…… 레이겐은 휴대전화를 꺼내 액정 화면을 한 번 바라보았다. 여전히 통신 불가 상태인 휴대전화에는 당연하게도 부재중 전화나 착신 메일 같은 건 없었다. 6시가 거의 다 되어간다는 것만 확인한 채로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리츠는 그런 레이겐을 바라보며, 그제야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레이겐 씨와 내가 사라지고 — 정확한 건 아니지만 — 꼬박 하루는 지났을 것이다. 형은…… 괜찮을까? 또 스트레스를 받거나 하진 않았을까?
또 무슨 일이 일어나 버리면 어떡하지?
“리츠.” 리츠를 바라보던 레이겐이 리츠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리츠가 깜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에쿠보나 세리자와나, 다른 녀석들이 같이 있잖아. 네가 어딜 크게 다치거나 죽은 것도 아니니까, 지금은 무사히 돌아갈 생각만 해라.”
무사히 돌아간다면 그걸로 괜찮아. 너도 그 녀석을 믿고 있잖아. 레이겐은 그렇게 말하며 리츠의 어깨를 두어 번 도닥였다. 리츠는 무언가 말하려는 듯하다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고 있어요.”
“그래. 아, 뭐라도 좀 마실래?”
레이겐이 엄지로 어깨 너머를 가리켰다. 자동판매기와 벤치가 놓여 있는 가로수길이 있었다.
 
레이겐은 벤치에 걸터앉아 등받이에 등을 기댄 자세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려 리츠를 쳐다보았다. 리츠는 여전히 페트병 뚜껑을 따지 않은 채로 손에 쥐고만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 걸었으면 목이 마를 법 한데 정말 안 마셔도 괜찮나. ……이크, 역시 배고프다. 먹을 걸 어디서 구하지. 사람이 없는 가게에 있는 음식을 먹으면 무전취식이 되나? 좀비 영화 같은 거 보면 나중엔 그냥 아무렇지 않게 가져다 먹던데……. 점점 미간을 좁히던 레이겐이 고개를 내젓고는 벤치에서 일어났다.
“슬슬 이동할까…… 걸을 수 있겠어?”
“네.”
둘은 가로수길 너머로 발걸음을 옮겼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편의점이 있었다. 다른 가게들과 다르게 어쩐지 조금 낡아 보이는 편의점이었다. 자동문 앞에 서면 당연하다는 듯이 문이 열렸으며, 레이겐이 먼저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고, 리츠가 뒤따라갔다. 편의점 안 선반에는 먹을것부터 시작해서 일용품이나 잡지 같은 것들이 놓여있었다. 리츠가 지나가면서 본 잡지는 꽤 낡아 보이는 — 더럽진 않았지만, 아무튼 ‘옛스러운’ — 물건이었다. 그것에 위화감을 느낀 것도 잠시, 레이겐이 리츠를 불렀다.
“여기 있는 빵이랑, 저쪽 도시락이랑…… 다른 마시고 싶은 거 있으면 저기서 꺼내오고.”
마땅한 취사도구가 없으니, 먹을 수 있는 거라곤 특별히 조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들뿐이었다. 리츠는 레이겐이 가리킨 선반을 둘러보며 고민하다가 닭가슴살이 든 도시락을 골랐다. 레이겐은 삼각김밥 두 개와 삶은 달걀, 생수 두 병을 골랐다.
고른 음식들을 카운터에 올려놓으려던 레이겐이 흠칫했다. 그러고 보니 계산해 줄 사람이 없군……. 평소 같았으면 지금이라도 저 문에서 사람이 나올 텐데. 역시 그냥 갈까…….
“……그냥 가져가도 괜찮을까요.”
스태프 룸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레이겐의 뒤에서 리츠가 말했다. 그러자 레이겐의 어깨가 들썩였다. 사람이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돈이 드는 것들이잖아요.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건 알지만……. 리츠도 레이겐과 똑같은 고민을 하는 모양이었다. 어, 어어. 그렇지. 리츠를 바라보며 그렇게 말한 레이겐은 다시 고개를 돌려 카운터 너머를 쳐다보았다가, 골라온 물건들을 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리츠, 더 먹고 싶은 건? 꼭 지금 아니어도 괜찮으니까.”
“네?”
조금만 더 골라보라는 레이겐의 말에, 리츠는 빵이 놓여있는 곳에서 빵 몇 개를 집었다. 레이겐도 선반에서 음식 몇 가지를 더 골라왔다. 그러고는 카운터 쪽으로 넘어가, 비닐봉지를 꺼내 고른 음식들을 넣기 시작했다.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적당히 고른 음식들의 값에 맞춰 돈을 꺼냈다. 꺼내고 나서도 좀처럼 결단하지 못하는 듯하더니 이내 그 돈을 카운터에 내려놓은 레이겐이 음식을 넣은 비닐봉지를 손에 들었다. 리츠가 작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둘은 이틀 치 정도의 식량을 얻어 편의점을 나왔다.
“사람이 아무도 없으면 비행기는 무리고…… 열차는…… 이쪽도 운전은 어렵겠는데.”
편의점에서 가져온(정확히는 사 온, 이 맞다. 아무튼 돈을 냈으니까) 것들로 배를 채운 레이겐과 리츠는 조금 더 걸어 가까이 있는 역에 도착했다. 도로를 달리는 이동 수단이 다 사라졌으니 열차도 없을 확률이 높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확인만 해 보자는 것이었다.
두 사람이 도착한 역은 카고시마 수족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카고시마역鹿児島駅이었다. 역 입구에도 여전히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승강장 쪽에도 정차되어 있는 열차는 없는 듯했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기 때문에 둘의 걸음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려 퍼졌다.
그럼 그렇지, 열차가 있을 리 없잖아. 이 장소에서 빠르게 이동할 수단이 없다면 시간이 늦었기 때문에 잠을 잘 곳을 찾아야 했다. 호텔 요금도 그런 식으로 내고 나와야 하나, 아니면 차라리 노숙해야 하나…… 레이겐은 그런 고민을 하며 역 주변을 걸어 다녔다. 한편, 승강장 쪽을 좀 더 둘러보고 있던 리츠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 레이겐 씨, 저기……!”
“왜 그래? ……어!”
리츠가 가리킨 것은 천장에 붙어있는 행선 안내기였다. 불이 들어와 있는 것인지 화면에 글자가 출력되어 있었다. 둘은 놀란 표정으로 행선 안내기를 올려다보았다. 발차 시각이 오후 7시 25분인 보통 열차 하나가 있었지만, 행선지 칸은 오류가 난 건지 글자가 깨져 알아볼 수 없었다.
“3분 뒤 카고시마역 도착이군.”
“행선지가 안 적혀 있는데요…….”
“여기서 타면 위쪽으로 올라가긴 할 텐데…….”
잠시 후 2번 승강장에 19시 25분 출발, 보통 열차  행이 도착합니다. 갑자기 역내 방송이 울렸다. 다른 단어는 그저 익숙한 안내 방송처럼 흘러나왔지만, 행선지만이 잡음이 섞여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역 안에는 아무도 없는데, 기계가 멋대로 작동하고 있는 건가? 레이겐과 리츠가 그런 고민을 하는 사이에, 열차가 들어오는 것을 알리는 알림음이 울리고 승강장으로 열차가 들어왔다. 문은 자동으로 열렸으며, 안은 타고 있는 승객 없이 텅 비어 있었다.
“……역시 안 되겠다. 타지 말자.”
“네?”
“탔다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잖아. 너한테 큰일이라도 나면 책임질 수 없어.”
리츠는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레이겐 씨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이런 상황인 만큼, 갑자기 열차가, 심지어 두 사람이 도착했을 때 딱 맞춰서 온다는 건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마치 여기에 누군가가 있다는걸, 그 시간에 올 거라는 걸 안다는 듯한 타이밍이지 않은가. 하지만, 이걸 타고 이동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지? 1,000km를 두 발로 걸어서 이동해야 하나? 구조가 올 때까지 버티고 있어야 하는 건가?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구조가 올 거라는 장담은?
대체 여긴 어디인 거지?
“하지만, 그럼…… 이 열차를 안 타면, 레이겐 씨는 어떻게 하실 건데요?”
 
그냥 열차를 타고 이동한다(후쿠오카福岡로)
걸어서 이동한다(오이타大分로)
 
 
 2.걸어서 이동한다
“……걸어서 가야지.”
레이겐의 대답은 단순했다. 그 말에 리츠의 눈이 가늘어졌다. 레이겐의 말을 대답으로 받아들이기라도 한 것인지 열차의 문은 닫힌다는 안내 방송도 없이 스르륵 닫혔다. 두 사람은 그저 플랫폼에 서서 열차가 그 누구도 태우지 않은 채로 출발하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가다보면, 다른 단서가 있을 수도 있고…….”
열차 소리가 잦아들 때쯤, 점점 작아지는 목소리로 레이겐이 말했다. 리츠는 어떤 대답이었더라도 마음이 편치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함… 그 어느쪽도 안전을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저도 그 생각을 안 한 건 아녜요.”
“……그래.”
리츠가 플랫폼을 뒤로했다. 행선전광판을 한 번 바라본 레이겐은 리츠의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카고시마 역을 뒤로한 채로 북동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
 
“힘들어…… 목욕하고 싶어…….”
“말하지 마세요…… 참고 있는데…….”
 
레이겐이 헉헉대며 멈춰섰다.
“헉…… 으, 이런 데서 계란 냄새가…… 응? 계란 냄새?”
레이겐은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봤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흰 연기가 바람을 타듯 올라오고 있었다.
“온천이네…….”
“그렇다는 건, 여긴…….”
리츠가 주머니에 넣어둔 지도를 꺼내 펼쳤다. 레이겐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오이타大分다.”
리츠가 꺼낸 지도는 오는 길에 관광 스팟에서 챙긴 큐슈의 지도였다. 리츠가 눈으로 지도를 훑는 사이, 레이겐이 옆으로 다가와서는 손가락으로 지도를 짚었다.
“걸린 시간을 생각하면…… 이쯤 온 건가?”
“……꽤 많이 걸었네요.”
“어때, 걷는 것도 나름 나쁘지 않지?”
오면서 별에 별 소리를 다 했으면서 뭔…
리츠는 한숨을 한 번 쉬고는 지도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곤 시선을 연기가 나는 곳으로 향했다. 두 사람은 한동안 그 광경을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
“…….”
레이겐이 리츠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리츠도 레이겐을 마주 보았다.
“들어갈래? 온천…….”
“……네.”
 
오이타 와본 적 있어?
아뇨, 멀리 여행 와 본 적은 없었어서요
그래? 그러고 보니 모브 녀석… 가족끼리 여행 간다고 안 온 적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네
표정 구기는 리츠
 
온천에 들어와 있는데 어디선가 소리가… 백발이 보임… 
어? 사람?
도, 도망쳤어요!
펄쩍 일어나서 나가보는 레이겐(리츠:으아악 그렇게 막 나가면 어떡) 그러나 놓침…
……어디로 갔는진 봤으니 따라가보자

(따라가면 다자이후(4화 중반))
 
 
1.그냥 열차를 타고 이동한다(후쿠오카로)
그 말에 레이겐이 숨을 한 번 들이켰다 내쉬었다.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그대로 선두 차량 승강장 쪽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잠깐, 레이겐 씨!?”
“운전석에 차장이 있으면 그대로 타고, 아니면 다시 내려! 알겠지!”
레이겐이 먼저 선두 차량에 탔고, 뒤따라 뛰어온 리츠가 탔다.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운전석 문에 있는 창에 얼굴을 붙이고 안을 둘러보는데, 사람의 기척은 보이지 않았다. 즉, 이 열차는 차장이 없는데도 문이 열렸다는 게 된다.
내려야겠다. 그렇게 생각한 레이겐이 리츠를 데리고 열차에서 내리려는데, 차 문이 순식간에 닫히고 말았다. 닫힌다는 안내 방송도 없었는데……! 당황한 레이겐이 고개를 돌려 다시 운전석을 보아도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행선지를 알 수 없는 열차는 그렇게 단 두 사람을 태운 채로 출발했다.
 

 
카고시마 중앙역에서 내려서 신칸센을 타고 하카타까지 가면, 도카이도・산요 신칸센으로 갈아타서 그대로 도쿄까지 갈 수 있다. 거기서 아지타마 현까지는 문제없겠지……. 뭐…… 이게 중앙역에서 정차하고, 그 뒤로도 열차가 쭉 있을 때의 얘기지만. 레이겐이 열차 한쪽에 붙어있는 노선도를 보며 말했다. 대략적인 노선을 확인하고 나서, 리츠가 앉아있던 의자에서 의자 반 칸 정도 떨어진 곳에 앉았다.
“중앙까진 금방이겠네, 바로 다음 역이고.”
“괜찮을 겁니다. 이렇게 되면 정차하길 바라는 수밖에 없잖아요.”
리츠가 맞은편 창문을 바라보며 말했다. 리츠를 바라보던 레이겐이 리츠에게 묻는다.
“리츠, 혹시 뭔가 느껴지는 건 없어? 이게 악령이 운전하는 열차라거나…….”
“……잘 모르겠어요. 특별히 느껴지는 건 없는데.”
“음…….”
그럼 뭐…… 오히려 이상한 것도 없다는 뜻이고, 네 말대로 괜찮겠다. 어차피 이 열차에선 곧 내릴……. 그렇게 말하던 레이겐이 문득 창문 너머를 바라본다. 바로 앞에 다음 역의 승강장이 보였다. 레이겐이 내릴 준비를 위해 의자에서 일어났지만, 승강장에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열차는 속도를 내리지 않고 그대로 그 장소를 지나쳤다. 그 순간 열차가 크게 흔들렸기 때문에 레이겐이 휘청이다가 그대로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승강장의 간판에는 분명 카고시마 중앙이라고 적혀있었다.
그렇게 한 시간이 흘렀다. 둘은 여전히 카고시마역에서 출발한 열차에 타고 있었다. 카고시마 중앙역을 지나친 이후로도 당분간 열차는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고, 레이겐이나 리츠가 멈출 수도 없었기에 그대로 열차에 타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한가지 다행인 점은, 창문 너머로 이세계에 갔을 때 같은 이상한 풍경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여전한 것은 둘의 거리도 마찬가지였다.
“리츠. 미안하다. 괜히 이런 일에 휘말리게 돼서.”
“됐어요, 별로 레이겐 씨 때문은 아니잖아요.”
“널 안 불렀으면 너한테는 아무 일 없었을지도 모르잖아.”
“……이제 와서 그렇게 말해도 늦었어요. 그리고, 레이겐 씨의 말을 거절하지 않은 제 책임도 있으니 괜찮습니다.”
“너어……. 이럴 땐 그냥 남 탓으로 돌려 둬.”
하지만,
“좀 괜찮냐?”
“네. 덕분에요.”
“그래.”
만약 이 상황에 혼자였다면…….
“저, 레이겐 씨…….”
“왜?”
레이겐이 리츠를 본다. 얼굴을 마주 보자 리츠가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나는 레이겐 씨한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아무것도 아니에요.”
“어…… 그러냐.”
레이겐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아니, 애초에 왜 레이겐 씨랑 이렇게…… 몇 번인가 형을 대신해서 나온 적은 있지만, 주목적은 제령이었고, 테루 씨나 에쿠보 같이 다른 사람 (에쿠보는 사람이 아니지만, 일단은) 과 같이 있는 일이 훨씬 더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장시간, 그것도 제령 외의 목적으로 레이겐 씨와 단둘이 있는 건 거의 처음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어쩐지 어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역은 그린랜드 앞, 종점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한 시간쯤 더 지났을 무렵, 차내 방송이 울렸다. 드디어 내릴 수 있군……. 열차가 드디어 멈춘다는 사실에 안심하는 것도 잠시, 새로운 의문이 떠올랐다.
“잠깐 기다려. 그린랜드 앞이라니, 그런 역이 있을 리가…….”
승강장에 들어선 열차가 서서히 속도를 늦춘다. 이윽고 문이 열리면, 승강장의 모습과 역 안내 간판이 한눈에 보였다. 간판에는 그린랜드 앞이라고 쓰여 있었다.
레이겐과 리츠는 열차에서 내려 역 밖으로 나가보기로 했다. 그린랜드 앞역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역 밖으로 나가자 바로 보이는 것은 유원지의 입구였다.
진짜로 그린랜드잖아…… 그럼 여긴 쿠마모토라는 건가? 잘 올라오긴 했군……. 유원지 입구 가까이에 역이 있는 게 그렇게 이상한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원래는 없는 역인가요? 나도 이쪽은 잘 안 와봐서 자세한 건 모르는데, 아마 역은 좀 떨어져 있었을걸. 그럼 이건……. 문득, 둘이 동시에 뒤를 돌아보았다. 방금까지 그린랜드 앞이라는 역이 있었던 곳에는 휑한 도로만이 놓여져 있었다.
방금까지 타고 왔던 열차도, 내렸던 역도 온데간데없다.
“역시 꿈인가…….”
“그럴 리가 없잖아요!”
이곳도 카고시마와 크게 다를 바는 없었다. 길가에는 사람도, 차도 없었으며, 불이 들어와 있는 건물도 보이지 않았다. 시간은 벌써 10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길가에 계속 서 있었다면 분명 평소보다 어둡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밝게 빛나는 곳이 있었다. 둘의 바로 앞에 있는 유원지였다. 놀이기구나 가로등의 불이 켜져 있고, 관람차, 회전목마 같은 놀이기구가 운행 중이었으며, 몽환적인 노랫소리마저 들려왔다.
“……왜 아무도 없는데 불이 켜져 있는 걸까요.”
“그러게나 말이다…….”
레이겐이 입을 떡 벌리고 멀리 보이는 놀이기구들을 쳐다보는데, 리츠가 무언가 깨달은 듯 몸을 떨었다.
“……레이겐 씨.”
“어?”
“여기서 뭔가 느껴져요.”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뭔가 있는 것 같아요. 리츠가 유원지 안쪽을 노려보았다. 아무리 정확히는 모른다고 하더라도, 처음으로 무언가 반응이 온 거라면 가는 수밖에 없다. 레이겐이 한쪽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는 유원지의 정문을 쳐다봤다.
“좋아, 가자.”
 
 
3화
넓은 유원지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서인지 더욱 넓어 보였다. 안으로 들어와서 살펴보아도, 직원이 있는 것 같지도 않은데 놀이기구는 여전히 운행 중이었고, 스피커에선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으며, 나무나 건물 지붕에 걸려있는 일루미네이션이 반짝이고 있었다.
마치 레이겐과 리츠가 이 유원지에 들어온 것을 환영이라도 하는 듯했다.
“생각보다 굉장하네, 여기…….”
레이겐이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며 말했다. 아니, 유명한 곳이니까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지만. 상상 이상으로 잘 꾸며져 있다고 해야 하나. 그 말에 리츠도 공감하는지, ……그렇네요. 하고 말했다.
“수족관 전세 다음에는 유원지 전세인가…… 그래서, 무언가 느껴진다고 한 건 좀 어떠냐?”
여기 들어온 목적은 그거잖아. 리츠가 말없이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입구에서 느꼈던 것은 안으로 들어오고 난 지금도 여전히 느껴지고 있었다. 그 무언가가 영의 기운인지, 초능력자의 기운인지 분간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리츠는 신경을 곤두세우고는 그것을 좇았다.
“아.”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것을 멈춘 리츠가 조용히 한 곳을 응시했다. 찾았다, 이 앞에 있어. 이 상황에 도움이 되는 거라면 좋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서 있자, 레이겐이 그 옆에 서서 같은 곳을 바라보았다.
“저쪽이야?”
리츠가 레이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앞을 봤다.
“네, 가요.”
“그래.”
둘은 좀 더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안쪽에 있는 놀이기구들도 운행을 계속하고 있었다. 약간 앞서가던 리츠가 회전목마 앞에서 멈춰 섰다.
“레이겐 씨, 저기 고양이가 있어요.”
“뭐? 어디?”
“그러니까 저쪽…….”
리츠가 손가락을 들어 올려 회전목마의 바로 앞을 가리켰다. 레이겐이 인상을 찌푸리고는 그곳을 바라봤는데, 레이겐의 눈에는 그곳에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레이겐 씨한테는 안 보이는 건가? 그 모습을 본 리츠가 생각했다. 레이겐 씨한테 안 보이는 거라면 눈앞에 보이는 고양이는 살아있는 게 아닌, 죽은 영이라는 게 된다.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카고시마 수족관에서 여기까지 오면서 단 한 번도 영을 마주친 적이 없었는데. 이곳에 존재하는 건 레이겐 씨와 나만이 아닌건가…….
그 순간, 고양이 영이 ‘냐앙’하고 우는 소리를 냈다. 리츠가 그 소리에 깜짝 놀라 고양이를 바라보자, 바닥에 앉아있던 고양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걷다가 뒤를 돌아 리츠가 있는 쪽을 응시했다.
“……따라오라는 것 같아요.”
그 고양이가? 레이겐이 그렇게 묻기 위해 입을 열었다가, 소리를 내지 않고 다시 닫았다. 여전히 레이겐에게 리츠가 말하는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다. 안 보인다는 건 고양이 유령 같은 거겠지. 영등등 일을 오래 해온 레이겐이기에 그것은 쉽게 납득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안 보인다는 걸 순순히 말하지는 않았지만. 뭐…… 리츠(정확히 말하자면, 능력을 가진 초능력자)가 하는 말이니 괜찮겠지.
“그래, 그런 것 같군.” 태연한 얼굴로 레이겐이 말했다.
언제까지 저럴 생각이지…….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한 ― 신기하게도 방향은 맞았다 ―  레이겐을 보며 리츠가 생각했다.
고양이가 보이는 것은 리츠뿐이었기 때문에, 그 후 자연스레 리츠의 뒤를 레이겐이 따라가는 형태가 되었다. 일루미네이션과 놀이기구의 불빛 때문에 밤인데도 전혀 어둡지 않았으며, 오히려 너무 밝아서 중간중간 눈을 찌푸리게 될 정도였다. 그렇게 한참 고양이를 따라가자, 그것은 어느 한 놀이기구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는 리츠와 레이겐을 바라봤다.
“이건…….”
“바이킹이군.”
[Super Viking]이라고 쓰여 있는 큰 간판이 있는 바이킹이었다. 리츠와 레이겐은 간판을 올려다봤다. 아래에서 시선을 느낀 리츠가 고양이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그것은 계속해서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왜 자꾸 이쪽을 쳐다보는 거지? 미묘하게 신경 쓰여……. 무시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마지못한 리츠가 레이겐에게 말했다.
“……타라는 것 같은데요.”
“뭐? 이걸? ……왜?”
“그건 저도 잘 모르겠지만…… 가만히 서서 계속 이쪽을 보고 있어요.”
여기 타면 뭔가 알 수 있나? 레이겐이 다시 바이킹을 쳐다봤다. 다른 놀이기구는 계속 움직이고 있었지만, 바이킹은 레이겐과 리츠가 앞에 도착했을 때부터 쭉 정지한 채였다. 마치 둘이 바이킹에 타는 것을 기다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악령한테 놀아난다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이런 상황이니만큼 신중하지 않으면……. 망설이고 있는 레이겐의 시야에 리츠의 뒤통수가 들어왔다. 리츠는 어느새 레이겐의 앞에 서 있었다. 똑바로 걸어간다면, 바이킹에 탈 수 있는…….
“가요, 레이겐 씨.”
“어, 어어? 리츠?”
리츠는 이미 마음을 굳힌 건지, 망설임 없이 탑승구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나, 그렇게 생각한 레이겐이 리츠의 뒤를 따랐다.
둘은 탑승구를 지나, 바이킹의, 적당히 스릴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은 자리 ― 맨 뒤에 앉으려고 하는 리츠를 레이겐이 말렸다 ― 에 앉았다. 따로 안내방송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앉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안전바가 내려왔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바이킹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러니까 진짜 유원지에 놀러라도 온 것 같네. 레이겐은 안전바를 꽉 잡았다.
“레이겐 씨, 무서우세요?”
“뭐? 하하, 그럴 리가 있나.”
아무렇지 않다는 듯 입꼬리를 올려가면서까지 대답한 레이겐이 살짝 고개를 돌려 반대쪽을 바라봤다. 사실 전혀 괜찮은 것은 아니었다. 그나마 맨 뒷자리는 아니니까 낫나……. 아직 바이킹은 반 정도밖에 올라가지 않은 상태였다. 그에 반해 리츠는 올라가는 바이킹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너야말로 중간에 내려달라고 하지 마라. 멈추고 싶어도 멈춰줄 사람 없다.”
리츠가 그런 말을 할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았지만, 레이겐은 그렇게 말하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원래 놀이기구를 잘 타는 걸지도 모르지. 초능력을 쓰는 녀석이기도 하고…… 아니, 모브가 멀미를 하는 걸 봐선 마냥 그렇지도 않은가. 재미있어 할 상황, 은…….
“…….”
아닌 것 같은데. 레이겐이 말없이 리츠를 바라보자 리츠가 왜요? 하고 말했다. 아니, 아무것도……. 라고 답하는 사이, 어느새 바이킹은 끝까지 올라가 있었다. 그것을 뒤늦게 깨달은 레이겐의 얼굴색이 살짝 안 좋아졌다. 소리만은 절대 지르지 않겠다고 생각한 레이겐이었다.
어느덧 바이킹이 멈추고, 둘은 바이킹에서 내렸다. 나가는 곳으로 나가보니 그 앞에 고양이가 앉아 있었다. 둘이 바이킹을 다 탈 때까지 이곳에서 기다린 것 같았다. 내려온 둘을 확인한 고양이는 또 다른 곳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리츠는 그것을 따라갔으며, 그런 리츠를 레이겐이 따라갔다. 바이킹에 뭔가 특별한 게 있던 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왜 타라고 한 거지……. 레이겐은 걸어가면서 계속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고양이는 회전목마 앞에서 멈췄고, 둘은 회전목마를 탔다. 다 타고 나오면 또 고양이가 걸어가고, 그 뒤를 따라가고, 다른 놀이기구 앞에서 멈추고, 그럼 그 놀이기구를 타고…… 회전목마 이후로 탑승한 놀이기구는 다음과 같다. 제트코스터, 티컵, 자이로 스톰, 크리스탈 하우스.
놀이기구 순서에 의미가 있나? 아니, 이거 그냥 놀고 있는 거 아니야? 크리스탈 하우스에서 느낀 어지러운 감각을 떨쳐내기 위해 레이겐이 작게 고개를 흔들었다. 이번에도 리츠를 따라 다른 놀이기구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리츠는 바이킹 이후로도 계속, 놀이기구를 타는 것을 재미있어했다. 유원지에서 재밌게 놀 나이긴 하지. 그렇게 납득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계속 그 고양이가 시키는 대로 따라가고 있는 건가…… 하고 레이겐이 리츠의 앞을 보는데, 거의 늑대 정도의 크기를 한 동물이 보였다. 레이겐이 눈을 한 번 감았다 떴다. 헛것을 보는 게 아니었다. 아무리 봐도 고양이 같이 생긴, 거대한 동물(의 영?)이 레이겐과 리츠의 앞을 걸어가고 있었다.
어라? 나한테도 보인다……. 근데 너무 크지 않나? 리츠가 저걸 보고 처음부터 고양이라고 하진 않았을 것 같은데.
“리츠, 저거 원래 저렇게 컸냐?”
레이겐이 리츠를 불렀다. 리츠가 뒤를 돌아본다.
“네? 뭐가요?”
“아니…… 저 고양이? 말이야. 전혀 고양이라고 생각되는 덩치는 아니다만…… 네가 말했던 녀석 아니야?”
고양이를 좀 더 가까이서 보기 위해 레이겐이 리츠의 옆에 섰다. 하지만 시선은 고양이에게로 가지 않고 그대로 옆에 있는 리츠를 향했다.
“……리츠?”
상태가 이상하다. 힘이 없는 것처럼…… 그러고 보면 걸음걸이도 조금 이상한데……. 레이겐은 리츠의 팔을 잡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뜨겁다. 리츠한테서 열이 나고 있다. 힘없이 걷는 거랑 무언가 관련이,
……저 고양이랑 관련이 있는 건가?
레이겐이 리츠를 멈춰 서게 하기 위해 팔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리츠의 움직임이 멈추자 고양이가 뒤를 돌아봤다. 생긴 건 어딜 봐도 고양이인데 말이지……. 레이겐이 주춤해서는 한 발 뒤로 물러났다. 고양이 쪽을 보고 있던 리츠의 시선이 레이겐을 향했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리츠의 목소리인 것 같으면서 어딘가 이질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들켰다면 어쩔 수 없지.”
그 말과 동시에 리츠는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 역시 그런 거였나……! 리츠를 받아 든 레이겐이 그대로 리츠를 안아 들었다. 고양이는 완전히 이쪽을 돌아보고는, 금방이라도 달려올 기세로 레이겐을 쳐다보았다. 뛰어야 한다. 한시라도 빨리. 직감적으로 그렇게 깨달은 레이겐은 리츠를 꼭 붙들고는 뛰기 시작했다. 고양이는 그런 레이겐을 빠른 속도로 따라오기 시작했다.
“리츠! 일어나서 저 녀석 좀 제령 해 봐!”
젠장, 일어날 리가 없나……. 이건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아마 저 악령(하는 짓으로 봐서는 악령이 맞을 것이다)이 리츠를 홀려서 힘을 뺏어갔기 때문에 리츠가 정신을 잃은 걸 것이다. 계속 놀이기구를 타게 한 것은 무방비하게 만들어서 힘을 뺏기 쉽게 하려던 거였겠지. 레이겐은 계속 도망치기 위해 달리고 있었고, 악령도 여전히 레이겐을 쫓아왔다. 어느덧 유원지의 놀이기구는 이상하게 움직이고 있었으며, 노래도 더 이상 몽환적이라는 느낌이 아니었다. 오히려 계속 듣고 있으면 소름이 돋을 것만 같았다.
어떻게 해야 하지?! 나 혼자서 할 수 있나!? 아니, 좌우간 지금은 하는 수밖에 없다……!
레이겐은 가로등이 빛나고 있는 길 앞에서 멈춰서서 뒤를 돌아봤다. 악령은 레이겐의 행동에 전혀 개의치 않고 그저 앞으로 달려오기만 하고 있었다. 이래 봬도 운동부에 임시 가입한 경험이 있다고. 얕보지 마! 레이겐이 악령을 마주본 채로 다시 달리기 시작하더니, 그것이 가까이 왔을 때 급하게 방향을 틀어 옆으로 빠져나갔다. 레이겐의 한쪽 발이 땅에 닿음과 동시에, 어째서인지 악령이 움찔, 하고는 뒤로 물러나 한동안 움직임을 멈췄다. 뭔진 잘 모르겠지만 이때다! 하고 생각한 레이겐은 방향을 바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한참을 리츠를 안아든 채 뛴 레이겐은, 관람차에 올라탔다. 이건 나름대로 생각을 한 후에 취한 행동이었는데, 단 한 번도 악령이 날아오르거나 벽 같은 곳을 기어오르는 걸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땅에서만 활동할 수 있는 녀석인가 보지. 그렇다면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공중이다.
리츠를 한쪽 의자에 앉히고, 레이겐이 반대쪽에 앉았다. 예상대로 악령은 날지도 기어 올라오지도 못했기 때문에, 지상에서 레이겐과 리츠가 탄 관람차가 내려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마냥 가만히 있던 건 아니었고, 관람차의 지지대를 흔드는 게 느껴지긴 했다.
숨을 돌릴 수 있게 된 건 좋았지만, 이 관람차가 지상으로 내려가면 그걸로 끝이었다. 과연 리츠를 안아 든 채로 악령을 피해서 달아날 수 있을지……. 오히려 여기에 타는 게 안 좋은 선택이었나……. 초조해진 레이겐이 입 위에 손을 올리고는 시선을 이리저리 굴렸다. 그때, 리츠의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윽…….”
“……! 리츠, 괜찮냐?!”
머리가 아프다. 리츠는 이마를 짚고는 천천히 눈을 떴다. 앞에는 불안해 보이는 레이겐이 앉아있었고, ……앉아있어?
리츠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러고는 주변을 한번 둘러보았다. 창문 너머로 유원지의 놀이기구들이 작게 보였다. 여긴…… 관람차다. 또 놀이기구에 탄 건가? 그 고양이…… 악령이 시키는 대로?
“레이겐 씨, 지금…….”
“도망쳐왔어. 그 덩치 큰 고양이 악령한테서.”
도망……. 마지막으로 크리스탈 하우스에 들어갔다 나온 건 기억에 있다. 거기서 여기까지 레이겐 씨가 옮겨주신 건가. 리츠는 자신이 악령에게 홀렸다는 사실, 그리고 레이겐에게 민폐를 끼쳤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했다. 조금만 더 정신을 제대로 집중했다면……. 내가, 좀 더 힘이 있었다면…….
“……제령할게요, 제가.” 리츠가 주먹을 꾹 쥔 채로 말했다.
“그럴 힘은 있어? 아직도 피곤해 보이는데.”
“그건…….”
레이겐의 말대로, 지금 리츠는 악령에게 힘을 꽤 뺏긴 상황이었기 때문에 본래의 힘을 발휘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뭐라도 하지 않으면 이대로 저희 둘 다 당하고 말 거라고요! 그래, 알고 있어. 그러니까…….
레이겐과 리츠가 탄 관람차는 어느덧 지상에 도착했다. 문이 자동으로 열리고, 계속 지지대를 흔들던 악령이 그것을 눈치채고는 달려오기 시작했다. 둘은 빠르게 나가는 문 쪽으로 달려가, 그대로 둘로 갈라져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악령은 리츠를 쫓아갔다. 뺏다 남은 것부터 전부 다 뺏을 생각인가 보네. 그렇게 간단히 따라잡히진 않아……! 리츠는 속도를 올려, 악령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하지만 체력 소모가 심한 상태였기 때문에 오랫동안 빨리 달릴 수는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리츠와 악령 사이의 거리는 좁혀지기 시작했다.
한참을 뛰던 리츠가 가로등이 있는 길 앞에서 멈춰 섰다. 숨을 헉헉대며 뒤를 돌아보면, 악령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리츠가 다시 도망갈 기색을 보이지 않자, 악령은 기뻐 보이는 표정을 지었다. 악령을 마주 본 리츠도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이제 술래잡기는 끝이야.”
리츠가 그렇게 말한 그 순간이었다. 옆쪽 길에서 레이겐이 튀어나왔다. 튀어나왔다는 건 말 그대로 점프하면서 등장했다는 뜻인데, 레이겐의 발이 땅에 닿음과 동시에, 정확히는 악령의 그림자와 닿음과 동시에, 악령이 움직임을 멈췄다.
“저게 멈췄었다고요?”
“그래, 어떻게든 시간을 벌려고 페이크를 치려고 했지. 가로등 밑이었는데…….”
관람차에서 레이겐에게 악령과 있었던 일을 전해 들은 리츠가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악령의 약점을 노려서 적은 힘을 들이고도 제령할 수 있게 만들면 어떻겠냐’라는 레이겐의 의견을 어떤 식으로 실행하면 좋을지 구체적으로 상의하고 있던 참이었다. 고양이 악령, 고양이, 가로등 밑…… 빛…… 그림자?
“아……!” 리츠가 무언가 떠올랐는지 작게 소리를 냈다. 그리고 이어서 말했다.
“책에서 본 적이 있어요. 영은 아니고 요괴랑 관련된 이야기였는데, 고양이 요괴 중에 그림자가 약점인 게 있다고…….”
“너 그런 책도 봐?”
레이겐의 말에 리츠가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지금은 상관없잖아요.”
“응…… 크흠. 그럼 이렇게 하자. 나가는 문으로 나감과 동시에 양쪽으로 갈라져. 아마 저 녀석은 높은 확률로 너를 노릴 거다. 누굴 노려도 크게 상관은 없지만…… 어떻게든 가까운 가로등 밑까지 가서, 다른 한쪽이 기습하는 거야.”
미안하지만 가로등까지 가는 길에는 도와줄 수 없어. 나도 리츠 네 도움은 받지 못한다. 그러니까 혼자 해야 해. 할 수 있지?
그리고 다시 지금.
레이겐의 기습으로 악령이 움직임을 멈춘 사이, 리츠가 악령의 그림자를 향해 양손을 올리고는 초능력을 사용했다. 악령은 정말로 그림자가 약점이었는지 한동안 괴로워하더니 증발해버리고 말았다.
“다행, 이다…….”
악령이 사라진 것을 본 리츠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레이겐도 휴, 하고 땀을 한 번 닦고는 리츠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 순간 리츠가 눈을 감더니 쓰러지듯이 레이겐에게 기댔다.
“리, 리츠? 너 괜찮…….”
당황한 레이겐이 리츠의 어깨를 잡자,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잠들었군. 어쩌지. 시간이 꽤 늦은 건 사실이지만, 주변엔 잘만한 곳이 없는데…….
리츠를 업어든 레이겐은 더이상 움직이는 놀이기구도, 불빛도 없는 유원지를 빠져나왔다.
 
 
4화
눈이 번쩍 뜨였다. 리츠는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방이 벽으로 막혀 있었고, 오른쪽 벽에 베란다로 통하는 큰 창문이 있었다. 마치 쵸미시에 있는 리츠의 방을 연상시키는 구조였다. 하지만 리츠는 그곳이 자신의 방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그것보다도 무사한 것에 대해 한숨을 쉬었다가, 무언가를 깨달았는지 창문 밖을 보고 있던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렸다. 그러자 레이겐과 눈이 마주쳤다.
“일어났어?”
테이블 옆 의자에 앉은 레이겐은 리츠와 눈이 마주치기 전까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레이겐 씨, 여긴…….”
“근처에 있던 호텔이야. 말해두는 데 돈은 냈다.”
레이겐이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리츠는 레이겐을 쳐다보다가 시선을 돌려 제 손을 바라봤다. 악령을 제령하고, 이제 무사하다는 것을 깨달은 직후부터 기억이 없다. 아마 쓰러진 거겠지. 그리고 레이겐 씨가 나를 여기까지 업고 ─ 업었는지 안았는지 업었다면 둘러업은 건지 그럴 일은 없겠지만 질질 끌었는지 리츠로서는 알 길이 없지만 ─ 왔다는 게 된다. 리츠가 입을 열었다.
“만약 이대로 영영 못 돌아가면.”
“어?”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레이겐이 멈칫했다.
“어떻게 할 거예요?”
“포기가 너무 빠른 거 아냐?”
레이겐이 테이블로 손을 뻗었다.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비닐봉지 속으로 들어간 손은 이리저리 움직이는 듯하더니 무언가를 집어 들고는 빠져나왔다. 레이겐은 리츠가 있는 침대 앞으로 가 들고 있는 것을 리츠에게 건넸다. 참치 마요네즈 삼각김밥이었다. 리츠는 시선을 피했다. 삼각김밥은 잽싸게 잡아채 갔다.
“……포기한 건 아녜요.”
“그럼 그런 상상은 하지 마. 어차피 돌아갈 건데 못 돌아갈 때 생각은 왜 하냐.”
다시 테이블 쪽으로 돌아간 레이겐이 다시 테이블로 손을 뻗었고 삼각김밥을 꺼냈다. 레이겐은 꺼내 든 장어 삼각김밥의 포장을 뜯고는 한 입 베어 물었다.
“돌아갈 거라고 장담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 이거 먹다가 체하겠군. 레이겐이 생각했다. 못 돌아갈 거라고 장담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레이겐은 그 대화를 이렇게 끝내기로 했다. 그런 억지가 어디 있냐고 반박하려던 리츠는 “그런 억지가…….” 에서 말을 멈췄다. 리츠의 말도 맞았고 레이겐의 말도 맞았다. 돌아갈 거라는 장담도, 못 돌아갈 거라는 장담도 할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이 사태에 대한 단서를 찾으며 쵸미시로 돌아가는 것뿐이었다.
둘은 한동안 말을 주고받지 않았다. 레이겐이 삼각김밥을 다 먹어갈 때쯤 리츠가 들고 있던 삼각김밥의 포장을 까기 시작했다. 레이겐은 페트병에 든 녹차를 마시며 리츠를 지켜보고 있었다.
“리츠, 어제 있었던 일 말인데.”
“말하지 말아주세요.” 곧바로 되돌아온 리츠의 대답에 레이겐이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네 잘못이 아니래도 그러네.”
“제 불찰이에요. 운이 좋아서 제령 한 거지, 안 그랬다면 지금쯤…….”
리츠가 눈을 찌푸렸다. 옆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리츠의 시야 앞에 갑자기 무언가가 휙 나타났다. 놀란 리츠가 상체를 뒤로 기울였다. 레이겐이 페트병을 들고 침대 옆에 서 있었다.
“이미 지난 일 상상하는 것도 금지다.”
레이겐이 리츠에게 페트병을 건넸다. 페트병은 아직 따지 않은 새것이었다. 리츠는 남은 삼각김밥을 입에 넣고는 페트병의 뚜껑을 열었다. 아침에 편의점에서 새로 사 온 것인지 안에 든 녹차는 차가웠다.
“그건 그렇고 역시 사람은 안 보이네…….”
레이겐은 발걸음을 베란다 쪽으로 옮겼다. 밖은 사람은커녕 새 한 마리조차 날고 있지 않았다. 리츠도 녹차를 마시며 창 너머를 바라봤다. 호텔 주변에는 사람이 살 법한, 비슷한 건물들이 줄지어 있었고, 그 옆으로 숲이 있었다. 멀리 있기 때문에 자세히 보이진 않았지만, 안내 간판이 있는 걸 보아 산책 코스 등도 존재하는 것 같았다.
리츠가 무언가 움직이는 것을 본 건 숲 쪽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
“왜 그래?”
그런 리츠의 반응을 레이겐이 눈치챘는지 입을 열었다. 리츠는 당황한 얼굴로 레이겐을 쳐다봤다. 이내 시선을 피하고는 말을 흐렸다.
“……아무것도…….” 이미 한 번 했던 실수다. 판단이 흐려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괜찮으니까 말해 봐.”
“……방금 저쪽에서, 누가 움직였어요.”
리츠가 손을 뻗어 숲이 있는 쪽을 가리켰다. 뭐? 하고 답한 레이겐은 곧바로 리츠가 가리킨 곳을 바라봤다. 무언가 움직였다는 게 거짓말이기라도 한 것처럼 숲은 고요했다.
“유령은 아닌 거지?”
“제가 눈치채지 못한 걸 수도 있지만…… 일단은요.”
레이겐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다가, 입을 열곤 이렇게 말했다.
“따라가 보자.”
 
*
 
리츠의 말에 의지하며 둘은 호텔 옆에 있던 숲속으로 들어갔다. 움직인 무언가를 찾기 위함이었지만, 한참을 걸어도 살아 움직이는 것은 보이지 않았다. 어느새 시간도 오후를 지나고 있었고, 꽤 숲의 안쪽까지 걸어 들어온 듯했다.
“어딜 간 거야…….”
“…….”
리츠도 필사적으로 주위를 둘러보거나 (만약 악령일 것을 대비해서) 기척을 감지하려고 해보았지만 성과는 없었다.
그렇게 해가 저물어 갈 때쯤, 드디어 숲의 출구가 보이는 듯했다. 오늘은 또 어디서 어떻게 잠을 자야 하나…… 같은 생각을 하며 숲의 끝자락에 다다른 레이겐은, 눈앞에 세워져 있는 건조물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다자이후텐만구太宰府天満宮다. 후쿠오카잖아…….”
다자이후텐만구는 후쿠오카현 다자이후시에 위치한 신사다. 학문, 문화예술의 신을 모시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며, 아침까지 있었던 쿠마모토의 그린랜드 주변에서 다자이후까지는 기차로 2시간 정도가 걸린다. 철도로 된 길을 따라 일정 속력을 낼 수 있는 탈것을 타야 2시간이니, 숲속에서 길을 찾아 걸어오는 데에는 어느 정도 시간이 소요될 터였다.
“자, 잠깐. 쿠마모토에서 여기까지 걸어왔다고……? 그렇게까지 오래 걷진 않았는데…….”
걸었나……? 레이겐이 노을 진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처음 와 봤어요.”
“엑, 진짜? 공부의 신을 모신다는 걸로 유명한 덴데, 참배하고 갈래?”
또 태평한 소리 하시네요. 아니,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그러지……. 그렇게 말한 레이겐이 주변을 한 번 둘러봤다. 여전히 사람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레이겐과 리츠 둘 뿐이었다.
“옛날 생각나네. 센터 시험 전에 딱 한 번 와본 적 있었는데.”
10년이나 더 됐는데 어째 바뀐 게 없냐. 그땐 사람이 이렇게 많아서……. 손짓으로 사람이 얼마나 있었는지를 표현하던 레이겐이 동작을 멈추었다. 레이겐의 기억 속 다자이후텐만구와는 달랐다. 어딘가 위화감이 있었다. 이내 그것이 바닥에 잔뜩 뿌려져 있는 종이 같은 것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다. 누군가에게 밟힌 흔적도 없는 걸 보아 새 종이 같은데, 이게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거지? 레이겐이 종이를 한 장 집어 들었다. 아무래도 바닥에 놓인 것들은 전부 뒷면을 위로 하고 있었던 건지, 종이를 뒤집으니 인쇄된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살아있는 사람이 있다면 교토로 와 주세요]
“어!”
둘은 적혀있는 글자를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종이에는 교토의 풍경을 찍은 사진과, 살아있는 사람이 있다면 교토까지 와 달라는 메시지뿐, 구체적인 날짜나 장소 같은 건 적혀있지 않았다. 다른 종이도 주워봤지만 전부 같은 내용이 인쇄되어 있었다.
“전단지……? 아니, 그것보다 이게 왜 여기에…….”
“…….”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건가…….”
“거짓말이면 어떡하죠?”
리츠의 말에 레이겐이 멈칫했다. 확실히 완전히 신뢰가 가는 것은 아니었다. 인쇄야 기적적으로 작동하는 컴퓨터와 인쇄기가 있어서 할 수 있었다고 해도, 하필 여기에 이렇게 뿌려져 있는 이유는 설명이 안 됐다. 이미 교토에 모여있는 사람들은 다 이곳을 지나 교토로 갔다는 말인가?
“그렇다고 완전히 무시하기에는 우리가 가진 정보량이 너무 적어.”
레이겐 씨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라고 리츠가 생각했다. 아무런 단서도 없던 상태에서 얻은 정보다.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가 볼 가치는 있을 터였다.
“어차피 가는 길이긴 하네요.”
“그래. 들르는 셈 치고 가 보지 뭐.”
둘은 전단지를 챙겨 주머니에 넣었다.
 
 
“아……. 힘들어. 이렇게 걸은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네.”
“…….”
레이겐과 리츠는 계속 숲속을 걷고 있었다. 아무리 땅의 7할이 산이라지만, 이 정도로 산길만 있는 건 아무리 그래도 너무한 거 아닌가. 레이겐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나무들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불평하지 말고 좀 더 빨리 걸어 주세요. 리츠가 말했다. 넌 지치지도 않냐? 레이겐은 어느새 나무에 한쪽 팔을 기대고 서 있었다.
“곧 있으면 교토니까요.”
다자이후텐만구에서 전단지를 발견하고 교토를 향해 걸은 지 일주일. 둘은 주고쿠 지방을 경유해 교토로 향하고 있었다.
“배에 탈 수 있었으면 이거보단 빠르게 도착했겠지.”
“운전 못 하시잖아요.”
“응…….” 레이겐이 다시 걷기 시작했다.
배가 운행하고 있었다면 오이타로 가 시코쿠 지방을 들르는 형태로 나아가는 방법이 있었다. 아마 평범한 여행이었다면 ─ 애초에 평범한 여행이라면 오이타까지 걸어갈 필요 없이 자동차나 기차를 타고 갔겠지만 ─ 좀 더 편하게 교토까지 갈 수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이것이 여행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슬슬 다자이후에서 챙겨온 식량도 동날 것 같은데, 차라리 숲이라도 벗어났으면──”
부스럭.
레이겐의 말을 가로막듯이 무언가가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둘은 멈춰서서 서로를 마주 보았다. 지금 레이겐과 리츠가 있는 세상에는 둘을 제외한 생명체는 존재하지 않았다. 적어도 카고시마에서 이곳에 올 때까지는 그랬다. 교토에 가까워져 가고 있었기 때문에, 전단지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사람일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악령이라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었다.
소리는 오른쪽 앞 풀숲 사이에서 났다. 리츠가 앞을 경계하며 초능력을 쓸 수 있도록 자세를 취했다. 그 순간, 풀숲 속에서 거대한 것이 우뚝 솟아났다.
“이야~ 여기서 사람을 만날 줄은…… 어, 어라?”
“아.”
리츠의 초능력에 의해 다리가 움직이지 않자 중심을 잃고 앞으로 고꾸라진 것은 다름 아닌 사람이었다.
 
*
 
“……죄송합니다. 일부러 그러려던 건 아니었어요.”
“아하하, 괜찮으니 사과하지 말아요.”
상대가 흙 묻은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리츠는 그래도 마음에 걸리는 모양인지 시선을 내리깔고 있었다. 갑자기 나타난 사람은 키가 레이겐과 비슷할 정도로 컸고, 훤칠한 인상을 하고 있었다. 백색의 머리카락은 꽤 긴지 머리를 묶었는데도 가슴께까지 오는 듯했다. 셋은 적당히 앉을만한 장소를 찾아 둘러앉아 있었다.
“당신도 사람이랑 만나는 건 처음인가 봐?”
“아, 네……. 그것보다 자기소개가 먼저겠군요. 저는 카와카미 마사오川神正雄라고 합니다.”
세 사람은 자기소개를 했다. 마사오는 레이겐과 리츠에게 자신에 대한 것이나 여기까지 오게 된 경위 등을 이야기해주었다. 그는 큐슈 사가 현 출신, 나이는 30대로, 연구소에서 깜빡 잠들었다 눈을 뜨니 센다이에 있었다. 사람도 동물도 만나지 못한 채 사가 현으로 돌아가기 위해 여기까지 걸어왔다고 했다. 리츠는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는 말에 실망했는지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연구소……?”
“이래 봬도 직업이 연구원이거든요.” 마사오가 안경을 치켜세웠다.
레이겐은 자신들이 겪은 일과, 큐슈의 상황에 관해서 설명했다. 그러자 마사오도 실망했는지 어깨가 축 늘어졌다.
“그렇군요, 어렴풋이 예상은 했지만…… 여기까지 걸어온 건 헛수고였던 걸까요…….”
“잠깐…… 당신, 교토는 안 지나왔어?”
“네? 아아…… 지나오긴 했는데, 연구소로 돌아가는 게 급해서 시내를 지날 생각은…….”
“……이걸 좀 봐줘.”
뭔가요? 마사오가 고개를 기울였다. 레이겐은 마사오에게 ‘살아있는 사람이 있다면 교토로 와 주세요’ 전단지를 건넸다. 전단지를 본 마사오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교토로 가면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건가요!?”
“그, 그래. 확실한 건 아니지만. 정확히 어디로 오라는 건지도 모르고.”
마사오가 큰 소리를 내 레이겐이 반사적으로 귀를 막았다.
“저희는 전단지에 적힌 말에 의지해서 여기까지 왔어요.”
“잘됐네, 헛수고가 아니게 돼서.”
“정말…… 정말이에요. 감사합니다, 두 분과 만나게 돼서 기뻐요.”
마사오는 레이겐과 리츠의 손을 한 쪽씩 덥석 잡고는 위아래로 몇 번 움직였다. 레이겐과 리츠는 동시에 ‘피곤한 사람이다’라고 생각했다. 어느덧 해가 저물고 있었기 때문에 세 사람은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하루만 더 가면 교토에 도착할 것이라고 믿고 있기도 (어디까지나 감각적으로만, 이다) 했고, 그 전에 사람을 만나 긴장이 조금 풀렸기 때문이기도 했다. 장작을 모아 와 불을 피우고, 서로 가지고 있는 음식을 교환해 먹고, 잡다한 이야기를 나누며 저녁을 보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교토로 향하자는 말을 마지막으로 셋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
 
눈을 뜬 레이겐은 어쩐지 추운 것 같다고 느꼈다. 온도가 떨어진 게 아니라, 주변이 어딘가 허전했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반쯤 감겼던 눈이 번쩍 뜨였다. 빠르게 주변을 둘러보고 나서야 왜 자신이 허전함을 느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리츠가 없다. 어제 만난 그 마사오라는 사람도.
“……리츠?”
레이겐의 옆에 있는 건 타다 남은 장작뿐이었다.
 
 
5화
리츠는 자신이 누워있는 장소에 의문을 느꼈다. 바닥은 차가웠지만 푹신했다. 분명 전날 흙바닥에 누워 잠을 청했을 텐데 흙냄새는 나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주변에서 소음이 들려오는 것도 같았다. 차가 도로를 달리고 있을 때 나는 소리였다.
차에 타고 있는 건가? 그렇게 생각함과 동시에 머리가 아파져 왔다. 이상하게 두통이 심했다. 어딘가에 부딪히기라도 한 걸까. 그러나 통증은 안쪽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으…….”
리츠가 손으로 머리를 짚으려고 팔을 움직였으나, 팔은 원하는 대로 리츠의 머리 부근으로 올라오지 않았다. 정확히는 올라오지 못했다. 양손이 밧줄로 묶여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리츠가 고개를 들어 운전석 쪽을 보았다. 자리에 앉아 핸들을 돌리며 차를 운전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마사오였다.
“……!”
리츠가 움직이는 것을 눈치챘는지, 마사오가 백미러로 시선을 보냈다.
“어라, 일어났어요? 빠르네…… 수면제는 적힌 대로 적정량 넣었는데 말이죠…….”
수면제?
리츠는 빠르게 기억을 되짚어 보았지만, 그런 걸 먹은 적은 없었다. 마사오로부터 약을 건네받지도 않았다. 건네받은 거라곤 마사오가 가지고 있던 음식이 다였다. 그렇다면 가능한 건 그 음식에 수면제를 넣는 것뿐이었다. 리츠는 피가 식는듯한 감각을 느꼈다. 그럼 나와 레이겐 씨한테 접근한 것도 의도적이었단 말인가? 하지만 어떻게…… 어? 레이겐 씨는 어디 있지? 리츠가 조수석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조수석에는 아무도 앉아 있지 않았다. 리츠가 뒷좌석에 누워 있었기 때문에 그 외에 사람이 탈 수 있는 곳은 없었다. 트렁크라는 가능성을 한순간 생각해 냈지만 그것만은 아니길 바랐다. 목적이 뭐야, 리츠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리츠의 말은 입에 붙은 테이프에 가로막히더니, 다른 소리는 전부 걸러지고 읍, 읍! 하는 소리만이 남았다.
“후후후, 놀랐나요? 설명은 차차 할 테니 지금은 일주일만의 드라이브를 즐기세요. 앞으로 한 시간은 더 가야 하거든요~.”
마사오는 웃으며 운전을 계속할 뿐이었다.
 
차는 덜컹덜컹 소리를 내며 달려갔다. 포장된 도로를 달리는 건 아닌 듯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것은 푸른 하늘과 솟아오른 나무들 뿐이었다. 산길을 달리고 있는 걸까. 어디로 갈 생각인 거지? 리츠는 마사오를 응시했다. 마사오는 가끔 노래를 흥얼거리긴 했지만 줄곧 조용히 운전하고 있었다. 마사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리츠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리츠가 마사오를 따라갈 이유도 알 수 없었고, 애초에 그런 의무는 존재하지 않았다. 리츠가 묶여있는 한쪽 손을 움직여 주먹을 쥐었다 펴 보았다. 손은 묶여있지만 초능력을 쓸 수 없는 건 아니었다. 초능력으로 저 사람의 움직임을 멈추게 한 뒤 위협한다면 도망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 리츠가 마사오를 향해 능력을 사용하려 했다.
“초능력이라면 소용없을 거예요.”
“……!” 리츠가 몸을 움찔 떨었다. 들켰나? 어떻게?
리츠가 동요하고 있다는 것은 리츠의 표정으로 쉽게 알 수 있었다. 마사오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그리고 리츠의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어떻게, 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내놓았다.
“실은 저도 초능력자거든요~. 이야~ 세상에 이렇게 초능력자가 많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니까요.”
마사오의 마지막 말에는 리츠도 동감할 수밖에 없었다. 중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주변에 초능력을 쓸 수 있는 사람은 형뿐이었는데. 리츠 자신이 초능력을 쓸 수 있게 됐을 즈음에는 주변에 초능력자가 더는 손가락으로는 셀 수 없을 만큼 있었다. 젠장, 왜 하필이면……. 리츠는 눈을 부릅뜨고 마사오를 쳐다봤다. 마사오가 무서우니 노려보지 말라고 말하며 웃는다. 아까부터 웃음소리가 귀에 거슬린다. 마사오가 웃을 때마다 리츠는 두통을 느꼈다.
수면제의 부작용 중에는 두통 증상이 있다고 책에서 읽은 적이 있었다. 그러니 줄곧 느끼고 있는 두통은 높은 확률로 수면제 탓일 터였다. 그걸 알고 있음에도, 어쩐지 마사오의 웃음소리에 두통이 증폭되고 있는 것 같았다.
결국 리츠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로 마사오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두통이 진정되었을 때쯤 차가 멈췄다. 창밖의 풍경은 아까와 다름이 없었지만, 나무가 좀 더 많아져서 하늘이 잘 안 보였다. 운전석에서 내린 마사오가 뒷좌석 문을 열었다. 리츠는 고개를 돌려 문이 열린 쪽을 바라보았다. 그런 리츠를 보고 마사오는 무언가 고민하는 것 같더니,
“저만 일방적으로 말하는 것도 재미없으니 이건 뜯어버릴까요.” 하고 리츠의 입에 붙여두었던 테이프를 뜯었다. 테이프는 리츠를 배려하지 않은 채로 빠르게 뜯겼고, 그로 인한 아픔에 리츠는 표정을 찡그렸다.
“당신…… 납치는 범죄야……!”
“경찰이 없는데 그런 게 상관이 있나요? 게다가 이제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뭔 소리야……? 리츠가 어이없는 듯한 표정으로 마사오를 보자, 마사오는 쪼그려 앉아 리츠와 시선을 맞추었다.
“제가 세계를 바꿀 거거든요.”
마사오가 웃었다. 어쩐지 소름 끼치는 웃음이었다.
 
마사오는 리츠의 구속을 풀지 않은 채로 리츠를 들쳐업고는 산길의 더 안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리츠는 유일하게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는 고개를 살짝씩 움직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바닥에는 길이 나 있었다. 확실히 자동차로 들어오기에는 좁은 길이었다. 리츠가 마사오와는 반대편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앞에 무엇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지나가던 풍경에 토리이鳥居가 나타났다. 뒤이어 마사오가 돌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리츠는 마사오가 향하고 있는 곳이 신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신사에 가는 이유에 대해서는 짐작 가는 게 없었다. 세계를 바꾸겠다는, 마치 세계정복을 하겠다는 말만큼 말도 안 되는 선언을 한 이후로 마사오는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았다.
마사오가 돌계단을 다 오른 후 정면이 아닌 왼쪽으로 방향을 틀은 덕에 리츠는 방금까지 마사오가 보고 있었을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리츠의 생각대로 도착한 곳은 신사였다. 하지만 바닥에 마구잡이로 나 있는 풀이나, 낡아 보이는 건물 상태로 보아 관리되고 있지 않은 신사인 것 같았다. 아무리 산속에 있다지만 이렇게까지 방치해 두기도 하는 건가? 리츠의 시선이 금이 가 있는 기둥에서 멈추었다.
마사오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것 같았다.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고 리츠는 생각했다. 마사오는 자신을 초능력자라고 소개했지만, 실제로 능력을 보여준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상대가 초능력자라 하더라도 반드시 강할 거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니 시도해 볼 가치는 있었다. 심지어 마사오는 이미 한 번 제 초능력에 걸려 넘어진 사람이었다. 리츠는 초능력으로 마사오의 움직임을 멈추게 한 후 손발에 묶인 밧줄을 풀어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초능력은 통하지 않았다. 리츠는 생각지도 못한 결과에 동요하고 말았다.
“되도록 반항은 안 해줬으면 하는데요…… 레이겐 씨가 어떻게 돼도 몰라요?”
대신 마사오의 입이 열렸다. 하지만 그것은 협박에 가까운 말을 꺼내기 위한 행동이었다.
“……! 레이겐 씨를 어떻게 한 거야!?”
“그건 비밀이지만…… 초능력을 쓸 수 있는 당신도 곁에 없는데, 위험한 건 확실하겠죠?”
마사오가 발걸음을 멈추었다. 건물의 문을 열고 있는 것 같았다. 리츠는 작게 “젠장…….” 하고 중얼거렸다. 결국 순순히 마사오를 따르는 결과가 되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온 마사오가 문을 닫았다. 눈앞에 보이는 내부의 모습에 리츠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뭐야, 여기…….”
“폐신사…… 거든요. 현실에서는.”
현실에서는? 그것보다 여길 정말로 폐신사라고 부를 수 있나? 리츠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물론 밖에서 본 신사의 모습은 폐신사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관리되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내부는 달랐다. 그곳에는 SF영화에나 나올 법한 기계가 한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었고, 한쪽 구석에 있는 책상 위에는 이상한 그림이 그려져 있는 종이들이 마구잡이로 흩어져 있었다. 신사에 있을 법한 낡은 물건들도 보였지만, 전체적으로 신사라기보단 연구소에 가깝다는 인상이었다.
“읏차…….”
마사오가 리츠를 한쪽 벽에 내려놓았다. 그제야 리츠는 방 전체를 제대로 둘러볼 수 있었다. 역시 신사 건물 내부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조금 갑작스러운 얘기지만, 카게야마 군은 지금의 현실이 괴롭거나 하진 않나요?”
마사오는 책상에 흩어져 있던 종이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아까부터 이야기에 따라가질 못하겠는데…… 세계를 바꾼다는 거랑 뭔가 관계가 있나?”
리츠는 그런 마사오의 행동을 경계하며 말했다. 받은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되려 질문한 것은, 답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정말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하하. 그럼 차례대로 전부 말해줄게요.”
당신을 여기에 데려온 시점에서 딱히 숨길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중얼거린 마사오가 책상 옆에 있던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리츠를 마주 보았다. 리츠가 침을 꿀꺽 삼켰다.
“먼저, 카게야마 군을 여기…… 그러니까, 이 세상에 데려온 건 저예요. 이곳의 사람을 전부 없애버린 건 뭐…… 엄밀히 말하면 저예요. 탈것을 없앤 것도, 기차를 움직인 것도, 유원지에서 당신들을 놀라게 해 주고 교토에 오도록 유도한 것도…… 저예요.”
그것들이 전부 누군가의 소행이었다면 형편 좋게 그런 일들이 일어났다는 건 이해가 됐다. 하지만 어떻게 그런 걸 할 수 있다는 거지? 이 세상? 사람을 없앴다니 어떻게?
“저는요, 신의 사자가 될 거예요.”
마사오는 차례대로 전부 말해주겠다고 했으나, 리츠는 마사오의 말에 따라갈 수 없었다.
“여기는 신을 불러내기 위해 제가 임시로 조작한 삶과 죽음의 경계. 신을 불러낸다곤 해도, 공짜로 되는 건 아니거든요. 제물이 필요하단 말이죠. 쵸미산에서의 소동은 제가 거기서 사람들을 데려오고 있기 때문이에요.”
 
전날 밤, 저녁을 먹으며 셋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이야기의 주제는 ‘이곳에 오기 전에 무얼 하고 있었느냐’로 흘러가고 있었다. 레이겐이 쵸미산 중턱에 등산객들을 괴롭히는 악령이 있는 것 같으니 제령 해 달라는 의뢰를 받아 쵸미산을 오르고 있었다고 하자, 마사오가 의아한 표정으로 레이겐을 쳐다보았다.
“제령じょれい……이라고요?”
“어어, 그래. 제령除霊. 왜 그래?”
“그럼 영능력자……? 유명하신가요?”
“어? ……나 몰라?” 마사오의 말에 레이겐이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자기소개할 때도 별말이 없었지. 지역 차이가 이런 데에도 영향을 미치나? 인터넷에도 영상 같은 거 꽤 많이 퍼졌었는데……. 그런 생각을 하던 레이겐은, 지금이라도 알아 둬, 라며 마사오에게 명함을 건넸다. 리츠는 그런 레이겐을 보면서, 모르는 게 레이겐 씨한테는 좋은 거 아닌가……. 라고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그런데, 설마 그런 의뢰를 한 사람이 있을 줄이야…….” 마사오가 말을 이어갔다. “그래도 덕분에 카게야마 군과 만나서 정말 다행이에요.”
“……?”
뭐가 다행이라는 거지. 리츠가 미간을 좁혔다.
“제물이 되는 데에는 조금 복잡한 조건이 있거든요.”
마사오가 의자에서 일어나 기계가 있는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리츠의 고개도 마사오를 따라갔다.
“여긴 현실 세계와는 시간이 조금 다르게 흘러갑니다. 이곳의 오늘은 1999년 6월 27일이에요.”
1999년. 기억 한 구석에 있던 이미지가 머릿속에 되살아났다. 수족관에서 레이겐이 핸드폰의 화면을 보여줬을 때, 확실히 그곳에는 1999년이라고 적혀있었다. 날짜는 6월 20일이었고, 그때로부터 일주일하고도 하루가 더 지났으니 오늘이 27일인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1999년인 것은 이상했다. 1999년은 지금으로부터 14년 전이다. 리츠는 1999년 7월 2일에 태어났다. 5일 전인 6월 27일에 리츠는 존재하지 않아야 했다.
“이때 아직 카게야마 군은 태어나지 않았죠?”
“…….”
리츠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마사오의 말이 틀렸기 때문이 아니었다. 리츠는 마사오에게 나이가 몇인지도, 생일이 언제인지도 이야기 한 적이 없었다. 마사오에게 생각을 읽혔다기보다는, 마치 리츠와 만나기 전부터 그 정보를 알고 있었던 듯했다.
“만약 이곳에서 본인이 태어난 날짜를 지나버리면…… 그 사람은 더는 현실로 돌아갈 수 없어요.”
마사오가 한 손으로 기계의 유리 부분을 쓸었다. 이상한 패널들이 달린 기계 장치 위로 스노우볼같이 둥그런 유리가 자리하고 있는 기계는 보랏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유리 속 정중앙에 조금 더 크기가 작은 무언가가 돌아가고 있었고, 주변에는 액체 같기도 하고 기체 같기도 한 것이 가운데를 중심으로 호를 그리며 돌고 있었다.  
“여기서 탄생일을 맞이하는 것…… 그게 제물의 조건입니다.” 마사오가 기계에서 손을 떼고는 리츠를 마주 보았다.
“뭐……!”
“곤란해하고 있던 참이었어요…… 최근 젊은 친구들은 등산을 잘 안 하나 보더라고요.”
마사오가 턱을 괴며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앞으로 한 명만 더 있으면 되는데 시간은 가고, 제물은 안 나타나고……. 그러던 중에 카게야마 군이 레이겐 씨와 함께 산에 올라온 거예요. 한순간 카게야마 군이 신으로 보일 정도였다니까요. 마사오는 손을 내리고 그대로 뒷짐을 졌다. 그리고 마치 즐거워하는 어린아이처럼 상체를 좌우로 흔들며, 웃었다.
“굉장하죠? 카게야마 군이 마지막 제물이 되는 거예요!”
“헛소리 마! 그런 게 되고 싶을 것 같아!?”
아직 마사오의 말이 반쯤 이해되지 않는 리츠였지만 ─ 애초에 정말로 신이란 게 존재하는지부터 묻고 싶었으므로 ─ 설령 농담이라 하더라도 어울려 줄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하지? 역시 초능력을 써야 하나? 하지만 저 사람 말대로 정말로 그걸로 인해서 레이겐 씨한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럼 나는…….
리츠가 생각에 잠겼다. 리츠의 이변에 눈치챈 마사오가 고개를 옆으로 살짝 기울였다. 뭔갈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적어도 방금 마사오가 한 말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짝. 마사오가 손뼉을 부딪쳐 소리를 냈다. 그 소리에 깜짝 놀란 리츠가 시선을 마사오에게로 향했다. 마사오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세요, 현실이 괴롭거나 하지는 않았나요? 무언가로부터 피하고 있지는 않았나요?”
마사오의 말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형인 시게오에 대한 것이었다. 아니, 예전에는 그랬을지 몰라도 지금은…….
지금은…… 바뀌었나? 리츠는 마사오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어느새 리츠의 이마에서 흐르기 시작한 땀이 얼굴을 타고 내려와 바닥으로 떨어졌다.
“신을 불러내서 신新세계를 만드는 거예요. 이제 그딴 현실이랑은 작별해도 돼요.”
리츠는 문득 레이겐을 떠올렸다. 
오늘은 1999년 6월 27일.
레이겐 씨는 84년생이다.
그럼, 레이겐 씨는 이미…….
 
 
6화
레이겐은 산길을 달리고 있었다. 어느덧 해는 저물고 있었고, 줄곧 달리고 있었기에 다리가 아파져 왔지만 멈춰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빨리 쫓아가지 않으면 리츠가 위험하다. 그 생각이 다른 것들을 차단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일어나서 리츠와 마사오가 사라진 걸 확인한 레이겐은 혹시라도 잠시 다른 곳에 간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둘을 기다려 보기도 하고 주변을 돌아다녀 보기도 했다. 그러던 중 잠을 자고 있던 곳에서 멀지 않은 위치에 자동차의 바퀴 자국이 남아있는 것을 발견했다. 설마. 나무를 짚고 있던 레이겐의 한쪽 손이 몸쪽으로 내려갔다. 정황상 마사오가 리츠를 데리고 차를 운전해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그게 아니라면 차의 주인을 따라갔거나. 하지만 그런 거라면 레이겐을 두고 갈 이유가 없었다. 마사오가 탐탁지 않아 했더라도 ─ 그럴 만한 사람 같진 않았다고 레이겐은 생각했지만 ─ 리츠가 레이겐을 깨워 데려갔을 터였다. 바퀴 자국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하던 레이겐은 아파져 오는 머리에 눈살을 찌푸렸다. 뭘 했다고 이렇게 아픈 거지……? 라고 생각했으나 짐작 가는 것은 없었다.
레이겐은 다시 모닥불이 있던 곳으로 돌아가 짐을 챙겼다. 바퀴 자국을 따라 걸어갈 생각이었다. 남은 음식을 확인하기 위해 비닐봉지를 뒤적거리는데, 낯선 물체가 들어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레이겐이 손으로 그것을 집어 비닐봉지에서 꺼냈다. 얇은 사각의 상자 겉면에는 수면제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다시금 머리 안쪽이 아파져 왔다. 레이겐은 한 손으로 이마를 짚고 한숨을 푹 쉬었다.
젠장, 당했다. 전혀 눈치 못 챘어…….
어디까지가 진짜고 어디까지가 연기였던 건지, 레이겐은 마사오를 떠올려 보았지만 두통이 사고를 방해했다. 게다가, 어째서 리츠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거짓말로 접근해 수면제를 먹이는 수법을 쓸 정도다. 리츠를 곱게 두지는 않을 거라는 것 정도는 확실했다.
바퀴 자국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끊어질 생각이 없는 그 자국이 마치 레이겐을 유도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레이겐은 거친 숨을 내쉬며 그저 바퀴 자국을 따라 달렸다. 대체 어디까지 간 거야. 교토까지 앞으로 곧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니었던 건가.
레이겐은 결국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워졌을 때쯤 달리는 것을 멈췄다.
다음날, 레이겐은 바퀴 자국을 남겼을 것으로 추정되는 차를 발견했다. 해는 어느덧 중천에 떠 있었다. 차 앞으로는 계속 길이 나 있었지만, 차가 지나가기에는 조금 어려워 보였다. 그래서 여기에 주차해 둔 건가. 레이겐은 차 안쪽을 흘겨봤다. 운전석 옆에는 차 키가 그대로 꽂혀 있었다.
“하아아…….”
레이겐은 한숨을 한 번 크게 쉬고는, 차를 지나 좁은 길로 향했다. 차 키가 꽂혀 있다고, 저 차를 운전해서 쵸미시까지 돌아갈 수 있다고 해서, 그래서 뭐? 그렇게 가면 지금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나? 누군가가 사무소에서 내가 도와달라고 하는 걸 기다리고 있게? 레이겐은 다시 달렸다. 하지만 그저 한 시라도 빠르게 가야 한다고 생각했던 아침까지와는 다르게, 발걸음은 신중했고 시선은 날카로웠다.
애초에 리츠를 두고 갈 수 있을 리 없었다. 어른으로서의 의무이기도 했고, 모브, 카게야마 시게오의 스승으로서의 의무이기도 했다.
동생한테 무슨 일이 생겼다가는, 가만히 있을 녀석이 아니니까.
그렇게 달려간 끝에 레이겐이 마주한 것은 어느 신사였다.
“이런 데에 신사가 다 있네…….”
의아함과 감탄이 섞인 말투로 레이겐이 말했다. 지금까지 레이겐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봤을 때, 이곳은 쉽게 올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다. 일부러 이런 곳에 지었거나, 주변에 마을이 있거나…… 려나. 누가 관리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지만……. 레이겐은 그런 생각을 하며 신사 입구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사람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백색의 머리가 길게 늘어져 있었다. 그 자식이다. 레이겐은 “어이, 거기!” 라고 소리치고는 마사오(라고 추정 중인 인물)을 향해 가까이 다가가려 했다. 무언가에게 붙잡힌 것은 그 순간이었다. 레이겐은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뭐야? ……어? 고양이…….”
그리고 곧바로 정신을 잃었다.
 
*
 
 레이겐은 천천히 눈을 떴다. 하지만 두통 때문에 다시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마치 뒷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감각이었다. 피라도 나는 건 아니겠지. 레이겐은 뒷머리를 만질 생각으로 오른손을 들어올리려 하였지만 이상하게도 왼손이 따라 올라왔다. 손이 밧줄로 묶여있었다.
“전단지에 있던 말을 믿었나 보네.” 갑자기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야?”
레이겐은 고개를 돌려 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봤다. 그러자 누군가가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레이겐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 사람을 빤히 응시했다. 레이겐에게 그 사람의 모습이 완전히 보이게 되었을 때즈음 그 사람이 멈춰섰다. 목소리의 주인은 리츠 또래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이였다.
“애니라고 해.”
“응? ……외국인?”
“아니야, 애인의 애에 무지개의 홍자를 써서 애니アニ라고 읽어.”
그 한자라면 아이코여도 충분했을 것 같은데……. 레이겐은 말을 삼켰다. 지금 중요한 건 이름의 읽는 법 같은 게 아니었다.
“그럼 그 전단지도 그 사람이…….”
“맞아. 그 사람, 여기서 터무니 없는 일을 벌이려고 해.”
“넌 뭔가 알고 있는 거야?”
“그것보다, 당신은 자기소개 안 해?”
애니가 불만스럽다는 듯 말했다. 그러고는, 솔직히 말하면 인터넷에서 질리도록 봐서 이미 알고 있긴 하지만, 이라고 덧붙였다. 막상 이렇게 아는 사람을 만나면 기분이 썩 좋진 않군……. 움츠러들었던 어깨를 편 레이겐은 애니에게 자기소개를 했다. 애니는 레이겐의 자기소개를 듣고 만족했는지 얼굴에 미소를 띄우고는, “잘 부탁해, 아라타카 씨.” 라고 말했다.
“그래서? 터무니 없는 일이라는 게 뭔데?”
“당신은 신을 믿어?”
애니의 말에 레이겐은 “아니.”라고 답하며 고개를 작게 저었다.
“신이 있었으면 난 여기 없었을걸.”
“반대야. 신이 있으니까 당신이 여기 있는 거야.” 애니는 잠시 뜸을 들였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사람은 신을 불러내려 하고있어.”
“뭐어?”
레이겐이 입을 떡 벌렸다. 불러낸다고? 신을?
“여기로 납치한 사람들을 제물로 신을 소환하는 의식을 거행할 생각이야.”
“아-…… 그러고 보니 직업이 연구원이랬나. 연구란 게 이런 거였냐고…….”
애니는 말을 멈추고는 고개를 돌려 안쪽을 바라보았다. 레이겐도 애니를 따라 시선을 옮겼다. 이제 보니 안쪽에는 많은 사람들이 힘이 빠진 듯 맥없이 누워있거나 벽에 기댄 채로 앉아 있었다. 마치 건전지가 들어있지 않은 인형 같았다.
“탄생일이 지난 사람들은 다들 저렇게 돼.” 애니가 말했다.
“탄생일?”
“제물의 조건이야. 여기서 탄생일을 맞이해야만 제물이 될 수 있어.”
“별 조건이 다…… 아, 그래서 여기 처음 왔을 때 1999년 이었던 건가.”
레이겐은 핸드폰의 날짜 설정을 떠올렸다. 뭔가 잘못 된 게 아닌가 했는데, ‘이 세계’에서는 핸드폰에 표시돼 있던 날짜가 정확한 날짜인 것이었다. ……잠깐, 그렇다면.
“오늘 몇 일이지?”
“내가 잘못 센 게 아니라면, 6월 28일이야.”
레이겐은 리츠와 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후쿠오카에서 교토로 걸어가던 도중, 어쩌다 보니 생일 이야기가 나와서 서로의 생일을 알려준 적이 있었다. 시게오가 동생의 선물을 고르는 것을 도와준 적이 있었기 때문에 초여름 언저리 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정확한 날짜를 알게 된 건 그 때가 처음이었다. 리츠는 7월 2일 생. 1999년 7월 2일에 태어났다.
며칠 뒤면 리츠가 제물의 조건을 만족하고 만다.
“괜찮아?”
“어? 어어…….”
레이겐의 안색이 나쁜 것이 신경쓰였는지 애니가 물었다.
“참고로 나는 1999년 7월 1일에 태어났어.”
“……!”
“시간이 없어. 조금만 더 있으면 꼼짝없이 신의 제물이 되어버려. 그러니까 도와줘.”
“도와달라니……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는 거야?”
“거기까진 몰라. 하지만 소환 의식 시작 전에 그 사람을 때려눕히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쉽게도 말한다. 뭐, 그것만큼 빠르고 좋은 방법은 없겠다만.
레이겐의 말에 만족했는지 애니가 미소를 지었다.
당신이랑 만나서 다행이야. 그 사람은 당신을 ‘이레귤러’라고 말했거든. 나보다 훨씬 나이도 많아 보이는데 당신이 아무렇지 않게 움직일 수 있는 건, 분명 당신이 그 ‘이레귤러’이기 때문이겠지. 
이레귤러라니... (왠지 좀 오글거리는데)
어라, 마음에 안 들어?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몇살로 보이는 거지…… 대답 안 하는 레이겐. 애니는 별 신경 안 쓴다는 듯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 사람, 마지막 제물을 발견했다고 했어. 그러니 아마 당신이랑 같이 온 사람이 마지막일 거야.
리츠...
만약 그 리츠 씨가 그 사람의 말에 동조했다면 세계를 구할 방법은 없겠네
그녀석이 동조할 리 없어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친한가 봐?
......그건,
아닐지도 모르지만... 레이겐이 말을 얼버무림 애초에 친하다 라는 단어를 쓸 만한 관계인가?
……아무튼 7월 2일이 되기 전에 그 자식을 막으면 된다는 거지? 좋아.
심호흡을 한 번 한 레이겐이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았다. 그러고는 양 팔꿈치를 양쪽 몸통에 바짝 붙였다.
“……뭐 해?”
“여기서 탈출해야지. 그러려면 밧줄부터 풀어야 하니까…….”
 레이겐은 양손의 팔꿈치를 양쪽 몸통에 바짝 붙였다. 그러고는 팔을 앞으로 뻗고는 손을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손바닥을 빠르게 비비자 순식간에 레이겐의 한쪽 손이 밧줄을 빠져나왔다.
...어떻게 한 거야? 놀란 애니...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 찾아본 적이 있었거든. 요즘같은 뒤숭숭한 세상에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레이겐은 풀어진 밧줄을 한 쪽 팔목에 대충 감아 놓고는 애니의 밧줄을 풀었다.
다음은 열쇠인데... 근데 이제서야 묻는 거다만 저 고양이? 들은 뭐야?
교주한테 있는 능력이야. 저것들을 조종할 수 있는 것 같아
그럼 우리가 뭘 하는지도 다 보고있다는 거야?
글쎄... 그정도로 고도의 능력은 아니지 않을까
되게 잘 알고 있네.
그 사람… 우리 아빠거든
뭣…!! 진짜냐…
풀네임을 말 안했던가? 난 카와카미 애니川神愛虹야.
아니 그럼 그자식은 본인 자식까지 이용하려고 하는 거란 말이야? 레이겐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만나기만 해봐라… 라고 생각하며 애니와 마사오의 관계를 뒤로하고… 레이겐은 놀이공원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림... 자아가 없는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러면 어느정도 대화도 통하려나... 라고 생각. 레이겐은 한쪽 팔목에 둘러 두었던 밧줄로 다시 양 손을 묶었다. 매듭은 짓지 않은 채로, 팔을 벌리면 바로 밧줄을 풀 수 있게 해두고는 철창 가까이로 걸어갔다.
“어이!” 레이겐이 큰 소리로 외쳤다. 소리에 반응한 것인지 고양이 한 마리가 철창 쪽으로 다가왔다.
“화장실 가고 싶어! 화장실!”
레이겐은 발을 동동 구르며 철창을 잡고 흔들었다.
“용변이라면 거기서 봐라.”
말했다! 아니아니, 말이 통한다……! 속으로 살짝 기뻐하는 레이겐.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진짜 화장실만 다녀올게, 어?”
얼굴을 철창가까이 갖다대며 호소하는 레이겐…
“……알겠다. 대신 동행하지.”
철창의 자물쇠가 해제되고 문이 열렸다. 그 순간이었다.
대괴생명체드롭킥!!! 타핫!
레이겐은 순식간에 밖으로 뛰쳐나가 고양이의 그림자를 밟았다. 놀이공원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그림자가 약점인 듯했다. 고양이는 괴로운 듯 움직임을 멈추었다.
끄악
“지금이야! 죽을 힘을 다해 뛰어!”
레이겐이 소리치자 애니가 밖으로 나와 뛰기 시작하고... 어느정도 멀어졌을 때쯤 레이겐도 전력질주...
둘은 어떻게든 고양이를 따돌리고 숲 속으로 숨었다.
 
 
7화
이 사이에 마사오가 소환할 신에 대한…
의미없는 증거들을 레랑 맃이 각각 발견하면 좋겠어
마사오 부인에 관한 건 애니가 레이겐한테 설명해주기로 하고
 
근처에 오두막이 있다는 걸 발견한 레와 애니
마사오의 집인가? 라고 생각했는데 맞는 것 같음
거기에 있는 책들 중에서 누군가의 일기를 찾음
마사오의 것이 아닌데…
내용을보니 이사람도 마사오와 똑같은 행동을 했음
근데 마지막 장이 찢어져있네
 
마지막장이라면 이거?
뭣, 뭐야 어떻게 찾았어?
액자에 묻은 먼지를 탈탈 터는 애니
액자 뒷면이 잘 안 맞춰져 있길래.
 
마지막장을 보니…
동력이부족했던것같다… 신은불러낼수없었다…
라는 문장이쓰여있음
동력이부족해?
만약 아빠가 이사람이랑 똑같이 하고 있었고 이 마지막장을 못봤다면…
…! 실패할 수도 있다는 뜻인가.
 
근데 너희 아버지는 왜 그런 짓을 하려고 하시는 거야?
몰라. …하지만 아마 엄마 때문일 거야.
어머님?
병으로 죽었거든.
 
8화
9화
 
어찌저찌 리츠 구출 직전까지 온 레
리츠랑 합류는 성공했으나 교주가 신을 소환할 준비를 끝냄
 
어쩌구저쩌구 아무튼 너가 하는 짓은 전부 소용 없는 짓이라고!
거짓말이야
아빠는정말로 엄마가 이런걸 원했을거라고생각해?!
엄마는말했어… (엄마가 한 말)
… …나는 ……나는무슨짓을…
-
나는 인체공학을 연구하는 연구원이었다.
가족도잇고 아므튼 잘살고있었는데 아내가 원인불명의 병에 걸림
연구를 위해 연구비를 요청하자 거절당함
하지만 이걸밝혀낸다면 더많은사람을구할수도
아무튼거절당함 연구계속안하면 자를거라는 협박까지
마사오는 계속 일했고 아내는 결국 죽음
아내를 잃고 우울해하던 중 그 일기를 발견
이거라면,
이거라면이런세상을바꿀수있어
다시행복하게살 수 있어
그렇게생각해서,나는…
-
여기서 마사오를 막고
마사오가 왜 이런짓을 벌였는지 설명해 주지만…
이미 신이 소환되기 시작해서 최종적으로 둘이 그걸 막으먄 좋겟어
흔들리는 땅… 지진인가? 하는 레이겐
그러자 마사오가 당황…
일기대로라면 실패해야 하는 게… 설마…
뭔데?!
이전사람은 동력, 즉 힘이 부족했다고 했습니다. 아마 제물로 바친 건 전부 일반인이겠죠. 하지만 이번엔, 애니와 카게야마 군이 있으니…
……!
아빠…
미안하구나 애니…
포, 포기하지 마! 다른 방법은 없어?!
방법은… 없습니다. 더이상 제가 손을 쓸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니까요.
마사오는 해탈한 듯 웃으며 고개를 툭 떨어트렸다.
레이겐이 기계로 다가가려 하자, 동력원에서 밝은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고,
세계는 빛으로 가득 찼다.
 
-
 
리츠, 너 생일이 언제냐?
갑자기 생일은 왜요?
아니... 이때 즈음에 모브가 너한테 줄 생일 선물로 뭐가 좋을지 모르겠다며 상담하러 왔던 게 생각나서. 곧인 거 아냐?
형... 레이겐 씨한테 그런 걸 상담하고 있었구나... 조금 미묘한 기분이 된 리츠
......7월 2일이에요.
오, 진짜로 곧이잖아.
아무래도 좋잖아요, 생일 같은 건.
생일 같은 거라니, 누군가에게 생일 축하를 받을 수 있다는 걸 좀 더 감사히 여겨!
(한숨) 그럼 레이겐 씨는 언제인데요?
나? 10월 10일.
아직 멀었네요.
기껏 얘기해 줬는데 나중에 까먹는 거 아니지?
......축하는 해 드릴게요.
 
 
마지막화
생일 축하해
누구야? 왜 내 모습을 하고 있어?
네가 마지막으로 바쳐진 사람이라서... 려나?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면 네가 놀랄 것 같고.
나는 그러고 싶다고 한 적 없어
응, 그런 것 같네
......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이게 신이라고?)
넌 어떻게 하고 싶어?
뭐?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문다는 거 말이야.
그런 거… 원하지 않는 게 당연하잖아
네 형을 진심으로 이해하게 될 수 있을 텐데도?
…무슨 소리야?
신은 어느덧 시게오의 모습으로 변했다…
나에게 보이는 세상이 리츠 네가 보는 세상보다 훨씬 넓다는 것정도는 알고 있지?
세계가 하나가 된다면, 리츠도 진정으로 내가 보고 있는 걸 볼 수 있어. 게다가, 소중한 사람을 잃고 슬퍼하는 사람들은 감동적인 재회를 할 수도 있지.
아무도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곳..
형은내세계의기본이었고, 나는 줄곧 형을 따라잡고 싶었다. 어쩌구저쩌구독백 하지만…… 형을 따라잡은 뒤엔 뭐가 있지?
미안하지만, 형의 모습으로 그런 말을 해도 소용 없어. 형이라면 그런 말은 안 할테니까.
…아니, 만약 형이 그런 걸 원하고 있다고 했더라도, 내가 막았을 거야.
삶은, 인생은… 단 하나뿐이기에 소중한 거라고. 그래서 어쩌구저쩌구
 
그게 네 대답이구나.
…….
응, 그럼 나는 이만 가볼게.
……뭐?
애초에, 진짜 그러겠다는 말은 한마디도 안 했는걸? 난 네 의견을 물어본 것뿐이고. 게다가…… 네가 그렇게까지 말하는 세계를 조금 더 지켜보고 싶거든. 
부디 후회하지 않기를 바랄게.
 
모브의 모습을 한 신은 어느 순간 사라지고 없었다. 
 
(여기에 레이겐 이야기도 넣고 싶었음) 
 
리츠!!!
레이겐 씨...
너 괜찮... 어...? 뭐야 몸이 왜 이래...
아마... 이제 다 괜찮은 것 같아요
그러냐? ...너 얼굴이 좀 핀 것 같다?
네?
평소에 그렇게 웃는 걸 잘 본적이 없... 앗 돌아왔다
레이겐 씨,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어?
레이겐 씨 덕분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어요
……하핫, 별말씀을. 나도 네가 있어서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어. 이렇게 오랫동안 애를돌본건 오랜만이다
뭐요??
 
여기서 좀 티격태격하다가
시야가 하애지고...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리츠, 스승님.
둘 다 괜찮은 거냐?
형...?
에쿠보...
시간이 늦었는데 연락도 안 돼서, 걱정돼서.
여기서 이 시간까지 뭘 하고 있었던 거야?
마주보는 리츠랑 레이겐
...돌아왔네.
스승님?
어? 아무것도 아니야! 하하하!
......
리츠? 왜 그래?
형......
아. 하고 멈춰서는 레이겐
모브 껴안고 엉엉 우는 리츠
리, 리츠? 괜찮아?
흑, 흐윽... 형...
너 리츠한테 이상한 말 한 거 아니냐?
이게 말이 심하네... 안 그랬거든??
 
 
에필로그
잘 지내게 된 리츠
레이겐 사무소로 갔는데… 먼저 온 손님이…
 
당신 생각보다 더 유명하더라. 이름 검색하니까 사이트가 뜨길래 찾아왔어
하하… 그래도 덕분에 무사한지 확인할 수 있어서 다행이네
저…
오 리츠 왔냐?
지난번엔 정말 감사했습니다
뭘, 내가 더 감사하지. 아빠를 막아줬잖아
아버님은 괜찮으셔?
아마도. 안 괜찮아도 괜찮게 만들 거야. 그럼 이만 가볼게, 잘 지내.
그래…
 
리츠너 요즘 좀 순순히 와주는 것 같다?

아니그러니까..고..고맙다고
형 대신 오는 거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솔직하지 못한 거 봐라…
그래서 그때 받았던 의뢰의 보수는요?
아 마침 연락하려던 참이었어
뚜루루루
여보세요? 쵸미산등산동호회죠? 거기 뫄뫄라는 분 계십니까? 예? 없다고요? ……아, 네. 실례했습니다.
……레이겐 씨?
그런 사람 없다는데? ……그럼 그때 그 의뢰인은 누구야?
 
멋진문장
그리고 THE END